악의

악의10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세 권째 읽으며 드디어 맘에 드는 작품을 찾아냈습니다. 정말 멋진 작품이에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범인을 제시하고 그 과정을 가가형사가 밝혀나가는 기존 구조와 거의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범인의 의도가 뒤집히고, 가가 형사의 회상이 이어지고,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거쳐 다시 범인의 본래의 ‘악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의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얽혀 막판의 스르르 풀려나가는 결론에 이르면 정말 시원해지기도 하고, 인간의 악의란 정말 그런 건가 하고 섬뜩해지기도 하네요.

여러 권의 히트작을 낸 작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해외 이민을 앞두고 마지막 작업을 하다가, 약속시간에 찾아간 친구 노노구치 오사무에 의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먼저 숙소로 이동한 재혼한지 얼마 되지 않는 아내, 예전 소설에서 악하게 묘사된 내용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옛 동기의 친지, 이를 수사하는 가가 형사의 교직 시절 옛 기억, 그리고 드러나는 모두의 이지메에 대한 기억과 그로 인한 영향까지 한 권의 책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끄집어내집니다.

가가 형사도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입장이라기보다는 교직에 몸담았던 기억을 딛고 극복하는 입장에서 서술하기에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사건의 전개도 이야기 서술보다는 작가로 알려진 인물의 수기 형식으로 이어지기에 조금 더 밀착된 관점에서 이야기를 상상해 나가게 됩니다. 그만큼 그 서술이 사실을 호도했을 때의 충격도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붉은 손가락에 비해 더욱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읽는 재미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맘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라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간만에 추리소설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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