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감옥

유리감옥6점
찰스 스트로스 지음, 김창규 옮김/아작

아작출판사에서 새로 출간된 SF인데, 이번에는 출장과 맞물려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전 작품들과 달리 시간이나 정신(?)이 종종 건너뛰어서 집중하기가 힘든 감도 있었네요. 하지만 설정이나 스토리만큼은 상당히 독특한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몇 번의 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로빈이라는 사람으로, 마찬가지로 여러 번의 생을 여러 캐릭터로 살아온 케이와 마주칩니다. 때로는 전쟁터에서 무생물에 가까운 전투기계로도, 때로는 인간과 다른 얼음 좀비라는 덜 진화된 생물로 살아오곤 했던 이들은 20세기라는 가상 역사 공간으로 들어가는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런게 가능한 것은 원자? 분자? 단위로 생체를 분해하여 백업해놓은 정신을 바탕으로 다시 복구하는게 가능해진 시대이기 때문인데, 이런 장치들이 ‘큐리어스 옐로우’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이 시대를 구성하는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도 생겨나지요.

이들이 들어간 20세기는 지금껏 살아온 시대와 비교하면 너무나 비논리적인 세상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미래의 눈으로 다시 보는 느낌이랄까요. 지금껏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아 이런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설정이에요. 성별로 나누어진 역할, 제약된 사회적 공간에서 남에게 맞춰야 하는 상황들, 군중 심리의 불안정함, 왕따, 좁은 사회의 소문 등등이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파헤쳐집니다. 여기에 이 작품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대신 설정 때문인지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이 들고 나가는 정신들, 그리고 육체들이 상당히 헷갈리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갑자기 상황을 휙 건너뛰기도 하고 이전 상황을 다시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설정의 힘으로 그럭저럭 따라가다 보면 어찌저찌하게 한숨을 돌리게도 해 줍니다. 친절하진 않지만 그래도 생각해볼 거리를 주고, 궁금증을 계속해서 던져주는 신기한 작품.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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