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

원제: Dogville (2003)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주연: 니콜 키드만, 폴 베터니
각본: 라스 폰 트리에

감상을 쓰면서 감독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다운 특이한 설정과 음울함, 안타까움을 함께 갖춘 영화.

놀랄만한 것은 영화의 배경 세트. 이건 직접 영화를 봐야할듯. 세트를 알려주는 것은 줄거리를 알려주는 것보다 더한 스포일러다. 여기에 니콜 키드만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멋지다!

도그빌이란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순진하고 겁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외부인에게 얼마나 잔인해지고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책을 쓰듯이 차근차근하게 보여준다. 파리대왕이나 배틀로얄 같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설정이지만, 도그빌에서는 그런 주제를 어떠한 감정의 폭발도 없이 담담하게 기술한다는 것이 특징. 담담하면서도 안타까움이 진해지는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전작인 ‘어둠속의 댄서’와 비슷한 느낌을 전해준다.

사람은 때로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잔인해질 수 있다. 요즘 이슈 중 하나인 이지메도 뉴스 화면이나 르포 등에서 보면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그리도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지만, 재미있는(?) 점은 당사자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너무나도 태연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를 봐도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운전중 길이 막힐 때는 상당히 잔인(?)해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잔인함은 익명성과 군중성에 그 뿌리를 둔다. 생각해 보면 길거리에서 부딪히는 사람이나 매너없는 운전자에게 화내는 것은 익명성에 기인하므로, 만약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면 당황하고 민망해하게 된다. 이지메나 도그빌의 경우는 군중성의 케이스. 사실 이 경우가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잔인함을 깨닫지 못하고 무감각해진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는 가해자들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그러한 사실을 지적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일을 지적하는 사람까지 한통속으로 몰아 또다른 잔인함을 낳기도 한다.

직장인으로서, 서울시민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지구인으로서(?) 타인에게 차별을 가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아픈 상처를 새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부담스러워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영화였던듯. 그렇지만 다시보고 싶지는 않을지도. 아픈 곳을 계속 찔리기는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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