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9년 8월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10점
김초엽 지음/허블

간만에 읽은 SF 단편집입니다. 김초엽 작가님을 추천하는 이야기는 익히 많이 들었는데, 역시 명불허전, 감성과 이성을 모두 건드리는, 그러면서도 규모있고 잘 짜여진 스토리를 놓치지 않는 좋은 작품을 모아주셨어요.

유전자 개조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동시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연결하는 끈을 놓치 않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난파한 주인공이 기록을 통해 감정을 계승하는 외계인과 감응하는 이야기를 다룬 ‘스펙트럼’, 누구나 잃어버리는 어린 시절 기억과 외계의 존재를 결합시킨 ‘공생 가설’, 그리고 표제작이면서 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이라는 미명 하에 가족을 만나는 길이 꼬여버린 한 과학자의 기다림을 다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이라는 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될 때 여러 감정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혹은 심상을 다룬 ‘감정의 물성’,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이면서 죽은 사람을 조문하는 기술로서의 뇌 스캐닝을 다룬 ‘관내분실’, 언론과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과 개인의 극복이란 것을 당사자의 마음과 비교하여 묘사한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제목만 들어도 바로 스토리가 떠오르는 단편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보석같은 SF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공생 가설이었어요. 외계의 존재이면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사회성 형성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하는 컨셉이 정말 매력적이었네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써 주시고 언젠가 더 멋진 장편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루루섬의 비밀, 댄싱 뮤지엄

루루섬의 비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예술의전당 어린이가족 페스티벌을 가능한 매년 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첫 공연인 아빠닭을 일정 관계로 못보고 나머지 두 편 – 댄싱뮤지엄과 루루섬의 비밀을 봤네요.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댄싱뮤지엄보다 루루섬의 비밀을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루루섬의 비밀은 보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일본 인형극단인 카카시좌 초청 공연이었네요. 엄마의 출산으로 섬에 계신 할아버지네로 가게 된 어린 소녀 하루와 섬에서 만나게 된 고양이, 돼지, 뱀, 올빼미 등의 동물친구들, 그리고 갑작스레 섬으로 쳐들어온 해적과 이들을 격퇴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가 일본 특유의 실물사이즈 소녀인형, 작은 미니어쳐인형과 세트, 그림자극 등이 복합적으로 펼쳐져 ‘아, 이런 표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장면장면 떠오르게 하는 멋진 극이었어요. 특히나 장면의 전환이나 유머, 그리고 음악도 적절히 사용되어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원래는 일본 극단인줄 모르고 봤는데, 보다보니 일본 특유의 클리셰가 중간중간 튀어나와 나중에야 ‘아~ 그렇구나’ 했다는..

반면 댄싱뮤지엄은 발레가 결합된 볼거리이기는 하지만, 일부 미술 작품에 대한 학습을 전제로 한 이야기라서 공감은 덜 갔네요. 명작이란 한 순간에 정지된 것이라는 사상과, 즐거움을 위해 작품의 인물들이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이란 것의 대립이란 건 이야기를 위해 설정된 티가 좀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박사님이 이를 행동이나 장면으로 보여주기보다 아이들과 입씨름을 하는 부분이 너무 길어 집중감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하지만 많은 작품 속 인물들의 댄싱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언제까지 아동극을 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공연들의 다양한 시도를 볼 수 있다는건 확실히 재미있네요. 내년도도 기대해봅니다.

댄싱 뮤지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루나 크로니클: 스칼렛, 크레스, 윈터, 레바나

스칼렛10점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북로드

예전 읽었던 루나 크로니클 1부: 신더의 후속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휴가기간 동안 집어들었는데 읽다보니 빠져들어서 2, 3, 4부까지 다 읽어버렸네요. 2부인 스칼렛은 빨간 두건을 테마로 한 지구인 조종사와 루나의 늑대인간과의 사랑을, 3부 크레스는 라푼젤을 테마로 인공위성에 유폐된 껍데기(루나인의 마법이 먹히지 않는 형질을 타고난 차별받는 루나인)이자 최고의 해커의 활약을, 4부 윈터는 백설공주를 테마로 해서 루나의 레바나 여왕의 의붓딸이면서 루나인의 사랑을 받는 윈터 공주가 어릴적 친구인 사냥꾼 호위병인 제이신이 목숨을 구해주면서 루나와 함께 여왕을 몰아내는데 힘을 합치는 활약을 보여줍니다.

1부 신더를 처음 볼 때만 해도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구에서 달로 활약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작가 마리사 마이어의 이야기 전개 솜씨가 진가를 발휘하는것 같아요. 설정 면에서는 중간중간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이 루나 함대 전체를 지구 위성의 감시망에서 숨긴다던지, 몇번의 접속만으로 시스템을 해킹한다던지 등등) 그런 면을 제하고 본다면 모험소설로서의 흡입력은 꽤 대단하다는 생각이네요. 캐릭터들도 낭비되지 않고 한명 한명이 주요한 순간에서 자기 몫을 해서 ‘그게 누구였지’ 하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도 좋구요. 덕분에 주연 네 명에 비해서 조연들이나 잠깐 스쳐가는 인물들도 중간중간 언급될때 바로바로 떠오르네요.

마지막에 본 레바나는 약간 사족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레바나 여왕도 지금의 그녀의 모습이 된 성장과정이나 아픔이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공감을 느끼기는 힘들었고, 그래서 짧은 글이지만 시원하게 읽히지는 않더군요. 굳이 추천하려면 원작 4부까지만 보는게 좋을듯. 다른 이야기를 다른 세계관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희망이 더 있네요. 앞으로 마리사 마이어란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또 써낼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크레스10점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현 옮김/북로드

얼음과 불의 노래: 3부 검의 폭풍

검의 폭풍 110점
조지 R. R. 마틴 지음, 이수현 옮김/은행나무

새로 번역되고 있는 얼음과 불의 노래 3부, 겨우 진도를 따라잡았습니다. 미드는 이미 대단원의 막을 내렸고, 이 ‘검의 폭풍’을 휴가기간 초에 다 읽고 나니 4부 까마귀의 향연이 새번역으로 나오더군요. 1년에 한번씩 나오는게 드라마 새 시즌을 기다리는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합니다.

3부의 스토리의 축을 이루는건 존 스노우의 장벽 전투, 대너리스의 세력 확장, 롭의 피의 결혼식이라는 느낌이네요. 존 스노우는 장벽 너머를 탐험하고 만스 레이더, 이그리트와의 만남을 통해 야인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순찰자를 지휘해 장벽을 방어하고 스타니스로부터 지휘자의 자질을 인정받기까지 성장합니다. 대너리스는 여전히 고민하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자기의 판단을 관철하는 의지를 보여주면서 드래곤들과 거세병이란 커다란 세력을 마련하고 자신의 세력을 도트락을 넘어 미린까지 확대해 나가죠. 반면 롭은 중요한 판단을 그르쳐 자신 뿐만 아니라 주요 가신들과 어머니 캐틀린까지 트윈스의 먹이로 던져주면서 북부 세력을 멸망의 위기에 몰아넣게 되네요.

여전히 브랜과 아리아는 피신 중이고, 산사는 조프리의 손을 벗어나 리틀핑거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며, 티리온은 조프리 살해의 누명을 쓰고 목숨이 경각에 처해 킹스랜딩을 도망치게 됩니다. 스타니스는 북부로 이동하고 리틀핑거는 이어리를 차지했으며 타이윈 라니스터는 목숨을 잃고 제이미는 킹스가드의 단장이 되었네요. 이런 인물들이 다음 4부에서는 어떻게 포석이 될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말미의 역자 코멘트를 보면, 이 3부까지가 미드와 스토리를 함께 이어나가는 부분이고, 4부부터는 이야기가 갈라져 나간다고 합니다. 존 스노우,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을 중심으로 아리아와 브랜이 서포트를 했던 드라마와 비교해 원작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