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2년 7월월

아케인: 리그 오브 레전드

Arcane' lands at No. 2 on Netflix global top 10 chart

잘 만들었다고 지인이 강력 추천하길래 집어들어 이틀동안 아홉 편을 몰아봤습니다. 롤을 안하는터라 세계관이나 캐릭터를 미리 알고 보지 못했지만, 추천글을 찾아보니 원작 게임을 모르면 오히려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보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상당히 흥미롭게 보고 게임 내 설정까지 추가로 찾아보기도 했네요.

디스토피아적인 면모의 미래라고 생각되는데, 깨끗하고 발전적인 기술만 받아들이면서 통제하는 윗동네(필트오버)와 하층민이 다양한 실험과 야성으로 생활하는 아랫동네(자운)로 나누어져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필트오버와 자운 사이에는 격렬한 충돌이 있었고, 양측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전쟁은 어느쪽에도 피해밖에 남는게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면적인 합의 하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전사 밴더는 폐허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매(바이, 파우더)를 받아들여 키우고 있으나, 두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필트오버에서 신 에너지원(마법공학)을 연구하는 제이스의 연구실을 터는 사고를 치게 됩니다. 필트오버의 집행관에게 쫓기는 바이와 친구들은 생명체를 광폭화하는 물질을 보급해 자운을 지배하려는 실코의 음모에 말려들고 이 가운데서 밴더는 목숨을 잃고 바이는 필트오버에 잡혀가며 파우더는 실코의 손에서 키워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필트오버와 자운의 갈등은 다시 심해지고, 필트오버의 과학을 과학의 영역으로만 제한하고자 하는 하이머딩거 교수, 마법을 과학의 영역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제이스, 과학을 통해 지하세계의 자치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빅토르, 유력 가문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옳은 뜻을 지키고자 하는 케이틀린 등이 주요 인물로 소개되지요. 케이틀린이 감옥에서 꺼내준 바이가 이제는 필트오버의 힘으로 무장하고, 실코에게 키워지며 정신적인 상처를 안고있는 파우더가 징크스란 이름으로 바이와 갈등을 쌓아나갑니다.

이런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길 바랬으나… 애매한 상황에서 9편이 끝나고 다음 시즌으로 이어진다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뭔가 타다 만 느낌이네요.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스토리라인이 몰입도는 있지만, 여러 SF에서 많이 쓰여진 설정이라 새롭다고는 하기 힘들고, 아트웍은 뛰어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실험적으로 쓰이던 기법을 많이 도입해서 ‘이런건 처음이야’ 같은 임팩트는 좀 부족했네요 (마도카에서 본 낙서같은 그림의 오버랩이 징크스의 낙서에서 많이 표현되더군요). 물론 돈을 많이 들인만큼 작화 퀄리티는 훌륭합니다. 바이와 징크스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

걸작이 될지 어떨지는 지금까지 펼쳐진 스토리가 어떻게 회수될지에 달린 것 같습니다. 시즌 2에서 어디까지 세계관을 확장해나갈지, 중간중간 어떻게 주요 떡밥을 회수할지, 그리고 어떻게 두 자매의 갈등을 이어나갈지 등이 평가를 좌우할 것 같네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요. 궁금하니 빨리 시즌2가 공개되었으면 합니다. 아마도 내년 정도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8점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더퀘스트

원제가 7과 1/2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데 겉표지가 없어져 있는데다가 속표지에는 7과 1/2이라는 원제만 크게 보여서 찾는데 한참 애먹었네요. 이건가 하고 꺼내서 안을 살펴봤더니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란 제목이 있더군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뇌과학에 대한 최신 논문 7건의 내용과 함께, 개요에 해당하는 뇌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이해를 주르륵 요약해놓은 부분까지 합쳐서 7과 1/2의 뇌에 대한 강의라는 것이라네요. 최신인 만큼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다고 착각한 내용을 바로잡아주는 흥미로운 내용이 참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뇌의 삼위일체 이론 – 뇌가 인간의 뇌, 포유류의 뇌, 파충류의 뇌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야기 – 이라든지, 인간이 지닌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가설, 인간은 무언가를 보거나 감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생각 등등이요.

마지막 작가의 말 부분에서 이 논문집, 혹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뇌에 대한 주요 사실을 요약해놓았으니, 이를 인용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해도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롭기도 하고, 무언가 상식을 깨뜨리면서도, 아항 그래서 사람은 이런 행동이 가능하구나 싶기도 했네요.


  1. 우리 안에서 마치 감정과 이성이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다양한 정신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뇌
  2. 너무 복잡해서 비유로 설명하면 그것을 지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뇌
  3. 스스로 재배선하는 것에 너무나 능숙해서 실제로는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뇌
  4. 환각을 매우 잘 일으켜서 우리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믿게 하고, 우리가 움직임을 반응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말 빨리 예측하는 뇌
  5.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다른 뇌를 조절하여 우리가 서로 별개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뇌
  6. 너무 많은 종류의 마음을 만들어내어 그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간 본성이 있을 거라고 추정하게 만드는 뇌
  7. 사회적 현실을 자연계로 착각할 정도로 자신이 발명해낸 것들을 너무 잘 믿어버리는 뇌

 

아무튼 술

아무튼, 술6점
김혼비 지음/제철소

작가님의 개인사 중에서 술과 관련된 유쾌한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뽑아서 엮어낸 즐거운 에세이입니다. 뭔가 크게 느끼고  감동하기보다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빙그레, 혹은 킥킥거리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여요. 술에 취해 내가 배추, 혹은 김치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택시기사님 옆자리에 앉아 자동차 운전 게임을 하기도 하는가 하면, 술자리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찡한 연애담을 풀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상사 뒷담화 및 구성지게 욕하는 법도 이야기합니다. 물론 술이 모든 것을 푸는 생의 중심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더 알아가는 윤활유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가벼운, 그러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네요. 짧지만 즐거운 독서였어요 🙂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001화10점
정수읠/매드햇

작년이었나 웹소설에 관심이 생겨 어떤 작품이 인기있나 찾아보다가 보게 된 것 하나가 먼저 읽고 다른 작품들까지 즐겁게 읽었던 유폴히님의 읽씹왕자(혹은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였고, 또다른 하나가 바로 이 정수읠님의 문송안함이었어요. 워낙 혼란스러운 스토리였으나 나름 중심을 잘 잡고 진행되던 터라 그래도 끝까지 쫓아가고 있었는데, 드디어 완결이 났네요. 그것도 워낙 만족스러웠던 터라 만점으로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다만, 추천하기에는 좀 저어되는게,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더라도 취향에 따라 스토리의 복잡함에 머리를 싸맬 사람들을 알기에.. 일단은 저는 너무 즐거웠다는 것으로 한표.

시작은 단순한 빙의물이었어요. 독특하다면 편집자한테 투고된 원고를 보다가 그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 거기가 판타지 세계라 마법과 검술이 중요했던 것이고, 주인공인 정진 (혹은 클레이오 아세르)에게 편집자 권한이 주어져 작자의 동의가 있다면 수정이 가능했다는 면이겠네요. 처음에는 스토리를 아니까 기회를 잡아 재산을 불리고 띵가띵가 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형제들의 증오를 뚫고 왕위를 이어야 하는 세째왕자 아서 리오그난과 만나게 되고 왕립 아카데미의 특출난 동기들과 엮이면서 + 므네모시네의 문으로 들이닥치는 마수의 습격과 그 내부의 이공간 미션을 파훼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렇지만 단순한 RPG 소설로 끝나지 않는건 아무래도 작가의 문과사랑 때문일지? 스토리 자체가 첫 번째가 아닌 9번째로 변경된 수정본인데 주요 인물들은 그 반복된 과정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고, 세계를 구성하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데 이야기의 개연성은 갈수록 삐그덕댑니다. 스토리 자체를 부수고자 하는 황태자 멜키오르, 아서를 누구보다 증오하여 세상을 부수더라도 죽이고 싶어하는 아슬란에 맞서 아서와 클레이오는 이시엘과 첼, 리피/레티샤, 프란 등의 동기들과 함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완결하고자 힘을 쓰게 되네요.

하지만 이 스토리로서의 이야기를 뛰어넘어, 편집하는 과정의 이야기, 그리고 몇 번에 걸친 수정과 변경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작자의 퇴고 과정, 쓰는 것은 작자이지만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편집자라는 인식 등을 종합해나가면서 전개되는 마무리는 정말 멋진 구성이기에, 그러면서도 스토리의 재미 또한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어디서 이런 작가가 나왔나 싶기도 해요.

그만큼 칭찬하고 싶지만, 과연 차기작도 이 정도로 멋지게 뽑아낼 수 있을지, 혹은 이보다 더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을지 기대해보고 싶은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이네요. 어쨌든, 책으로 나오면 구입하고 다시 일독해야겠습니다.

아발론 연대기 1: 마법사 멀린

아발론 연대기 16점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북스피어

아더 왕 전설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신화/설화를 모아서 편찬한 아발론 연대기의 1권입니다. 예전에 몇 권까지인가 읽었었는데, 너무 길어서 의무감처럼 읽다가 머릿속에도 남지 않는 것 같아 접어두었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네요. 단순히 마법사이자 드루이드로서의 멀린뿐만 아니라, 악마의 아들이지만 그 손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의 보고가 된 현자로서의 멀린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켈트 신화와 기독교 전설이 혼합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더 왕 이야기는 아마도 후속 권에서 많이 다뤄지기 때문에 후반에 잠깐만 등장하네요. 정체를 숨기고 어떤 기사의 손에서 자라나면서 케이와 베더비어와 친형제처럼 자라나고, 유더 사후 왕을 선출하는 자리에서 엑스칼리버를 뽑는 장면까지만 이야기됩니다. 이 책에서는 그 전 멀린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멀린이 처음으로 태어났을 때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 맞서 용의 저주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예언을 하는 장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불륜, 골로이스 공작 부인인 이그레인에게 반한 유더와 아더의 탄생 등 부분부분 알고 있었으나 상세한 내용은 몰랐던 야사 등이 재미있었네요.

여기에 더해 후반부에는 성배에 관한 전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루시퍼가 추락하면서 떨어져나간 보석이 성배로 만들어지고, 아리마데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면서 그 성배에 성혈이 담기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굴에 갇힌 요셉이 긴 기간동안 성배의 은혜로 살아남고, 구출된 이후 성배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앉게 되는 원탁을 만들며, 그 가운데 아무나 앉을 수 없는 위험한 자리가 마련되는 과정 등이 이야기되어 있네요.

2권에서는 이제 아더 왕 이후 원탁의 기사들에 대한 내용이 본격적으로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분명 읽었지만 기억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흥미로울 것 같네요. 시간될 때 하나씩 읽어보도록 하죠 🙂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6점
셰리 토머스 지음, 이경아 옮김/리드비

셜록 홈즈가 여성이었다는 설정으로 빅토리아 시대에서 여성이 독립하여 살기, 당시의 사회상이나 남녀 관계, 그리고 범죄와 로맨스 등을 새로운 관점에서 묘사한 레이디 홈즈 시리즈의 1편이자 개요 버전입니다. 사실 사건보다는 샬롯 홈즈라는 통통하고 귀여운(?) 양가집 레이디가 남다른 관찰력과 논리력을 가지고서도 능력을 숨길 것을 강요받는 상황 하에서 사고를 침으로써 가족과 절연하고 집을 나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며 인연을 만들어가 사립 탐정이라는 일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사건 자체는 희미하게 샬롯의 독립 과정에 따라오지만, 엉겁결에 샬롯의 독립과 엮여서 풀려나간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주요 사건은 시골에서 갑작스럽게 동맥 파열로 사망한 해링톤 색빌 경의 죽음과, 샬롯이 친 사고를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슈르즈버리 부인의 죽음에 대한 연관성과 살인범 탐색이지만, 샬롯의 친우인 잉그램 경, 그를 통해 정보를 얻고 수사에 활용하는 트레들스, 홈즈를 후원하며 사무실 공간도 제공해주는 왓슨 부인, 사건을 꾸미고 여성으로서 먼저 독립해서 복수를 펼치는 론스데일 양과 남편 모리어티(!),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글로 펼쳐내는 언니 리비아까지 인물 소개적인 면모가 더 돋보이네요.

일반적인 셜록 홈즈 패러디와는 달리 사건 구성, 인물간의 스토리, 그리고 글로 남기는 과정까지 새로 창조된 버전의 주홍색 연구라는 느낌입니다. 미국 유타를 배경으로 한 원래의 스토리와, 영국에서 일어난 독신 귀족 남성의 추문에 대한 수년 뒤의 복수극을 재창조한 작가의 솜씨는 정말 멋드러지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등장하는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화신인 밴크로프트 경은 어떤 모습일지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다음 권인 벨그라비아 사건은 아마도 보헤미아 스캔들의 리메이크일 것 같은데 빨리 보고 싶네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

누군가 추천글에서 올해 본 영화 중 매버릭보다 더 재밌게 본 영화가 있다길래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런 영화일 줄이야?! 올해는 아무래도 멀티버스가 영화계 유행인가봅니다. 메이저 자본이 투입된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아트무비 쪽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제작사 작품인가본데, 정말 감독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4차원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이렇게 정신없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연출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네요. 그리고 주연들 역시 헐리웃에서 받은 차별을 한번에 풀고 싶은지 정말 다들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쳐보입니다. ㅎㅎ

어릴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친과 미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세탁소 일에 치이면서 딸을 키우는 이블린 왕(양자경)이 주인공입니다. 남편 웨이먼드 왕은 애정 하나만으로 이블린을 미국에 데려왔지만 억척스러운 일에 파묻혀 행복하지 못해하는 부인을 보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지 못해 이혼을 고민하고 있고, 딸 조이는 대학까지는 잘 갔으나 자퇴하고 미국인 파트너를 데리고 커밍아웃하며 갈등이 있는 상황, 결혼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불편한 몸과 치매끼로 미국으로 건너와 이블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무사 디어드리(제이미 리 커티스)는 이블린의 탈세를 의심하면서 증빙하지 못하면 사업장을 압류하려는 상태. 한마디로 불행의 총합인 상태에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민 가족을 이끄는 여인의 잔혹사 같은 느낌인데, 세무서 건물 엘레베이터에서 남편이 갑자기 특수한 이어셋을 주며 세금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뜬금없는 메시지를 전하며 상황이 뒤집힙니다. 뜬금없는 적들이 남편과 자신을 잡으려 뛰어들고, 세무사는 프로레슬링 기술을 선보이며 남편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존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딸 조이의 멀티버스 버전, 모든 세상의 고민과 진실을 담은 에브리씽 베이글이 모든 것을 흡수하도록 하려는 음모에 맞설 수 있는 존재는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불행한 선택만을 한 현재 버전의 이블린밖에 없다는 진실을 전해줍니다.

그 가운데 선보이는 수많은 오마주가 이 심각한(?) SF를 코믹과 결합해줍니다. 매트릭스의 기술 다운로드, 성룡의 쿵푸 액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침팬치, 라따뚜이의 요리사를 조종하는 동물 장면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패러디 속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 보여주는 스토리가 마음을 움직이는 면모도 보여주네요. 단, R등급이란 면은 주의해서 봐야 할듯. 뜬금없이 등장하는 코믹 요소가 깜짝 놀랄 정도의 수위라 가능하면 혼자 낄낄거리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이런 영화가 나름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상당한 성적을 거둔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관객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범위가 나름 다양하다는 느낌도 드네요. 아마도 한국에서는 개봉하기 힘들듯 하지만 기회가 되는 분들은 (그리고 어느 정도 B급 수위에 대해 면역이 있는 분들은) 즐겁게 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덧, 어릴적 구니스에서 봤던 동양계 소년이 훌쩍 커서 남편 웨이먼드 역으로 출연하네요. 너무 오랜만이라 전혀 몰랐는데 반가왔습니다 🙂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리커버 개정판)6점
김산해 지음/휴머니스트

(Fate:Grand order 덕분에) 이름은 많이 들어본 길가메쉬였는데, 어떤 신화인지 이야기인지 모르고 알음알음 설정집 등을 통해서 조각조각 알게 된 내용을 한번에 정리해서 볼 수 있는 책이었네요. 의외로 여기저기서 들어본 명칭이 많이 나와서 놀라기도 했구요.

일단 시작은 수메르 문명부터입니다. 기원전 4천년이 넘은 옛날 최초의 국가를 세웠고, 이들에 이어서 악카드(셈족) – 히브리 – 바빌론 – 앗시리아 등의 국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수메르는 쐐기 형태의 설형문자를 사용했고, 이 책은 이런 설형문자로 기록된 석판을 해석한 내용을 구성한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그런만큼 우리가 성경에서 알고 있던 많은 내용이 이 수메르 기록에 쓰여있는 내용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들 알고 있는 대홍수에 대한 내용 외에도 아담과 에덴동산, 뱀에 대한 저주, 카인과 아벨 등의 이야기가 수메르 신화와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건 참 흥미로왔어요.

여기에 주인공인 길가메쉬와 그의 시종이자 절친인 엔키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강하지만 너무 맘대로 힘을 휘두르는 길가메쉬 왕을 제어하기 위해 야생에서 태어나 자란 엔키두를 신전의 여성을 이용해 끌어들여 왕과 싸우게 하고, 결국 두 사람이 화해하고 모험을 해나가지만, 신의 저주를 받은 엔키두가 죽으면서 영원히 살고자 여행을 떠나는 길가메쉬와 영생을 한 끗 차이로 놓치는 이야기에요. 중간중간 빠진 문장이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로 엮을 수 있는 스토리를 몇천년이 지난 지금 해석해서 읽을 수 있다는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명칭인 에리두가 이 수메르에서 인간을 만든 신 엔키가 인간을 만들고 지내게 한 최초의 도시의 명칭이란 것을 알게 된게 제일 인상적이었네요. 그 외에도 이 수메르 신화가 성경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도 영향을 줘서 제우스의 어이없는 행동이 수메르 신화의 내용에 그 원류가 닿아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요.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나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역사의 기록과 발굴, 해석의 가치란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였던 것 같네요 🙂

RRR: Rise, Roar, Revolt

RRR poster by kanthi7 on DeviantArt

재미있다는 말에 집어들었다가 쉬지도 않고 세시간을 연속으로 보게 되고, 끝나고 나니 영화 세 편을 한꺼번에 본 듯한 느낌이네요. 몰입감과 재미가 정말 대단한 작품이고, 헐리웃과도, 한국영화와도 다른 인도의 블록버스터란게 이런 느낌인가 싶은 작품이었네요.

배경은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 인도의 한 지역, 인도인들을 탄압하는 총독과 그 부인이 한 부족의 아이를 납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부족은 환경친화적으로 살아가는 평화로운 민족이지만, 양을 치는 양치기처럼 필요할 때는 어디라도 추적해서 싸우는 면모도 가지고 있고, 아이의 오빠인 빔도 그런 인물입니다. 호랑이와 싸워 이길 정도의 힘과 따뜻한 마음씨를 겸비한 동글동글한 아저씨네요.

반대쪽에는 계속해서 진급을 최우선을 하며 상사의 말에 어떤 어려운 임무라도 해내는 인도인 경찰 람이 있습니다. 공을 세웠음에도 영국인에 밀려 진급이 늦어지지만, 총리를 위협하는 인물을 잡아오면 특진을 해주겠다는 말에 덜컥 임무를 맡고 수사에 나서죠.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은 만나 위기에 처한 한 아이를 구해주면서 우정을 쌓게 됩니다.

한 사람은 총독관저를 침입하려는 인물, 한 사람은 그를 쫓는 경찰, 그리고 둘 간의 우정. 한 마디로 인도판 무간도이지만, 두 사람의 갈등과 액션,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사실과 마지막에 힘을 합쳐 액션을 선보이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윈터솔저의 모습도 보여집니다. 이와 함께 일제시대를 겪은 우리이기에 느낄 수 있는 독립에 대한 열망은 아나키스트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누군가는 우리나라로 치면 안중근과 윤봉길의 태그무비 격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더군요 🙂

스토리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겠고, 인물관계도 알겠고, 액션도 CG인걸 알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너무나 신나게 음악과 액션을 즐길 수 있는건 역시 인도영화이라서겠지요. 초반 두 인도인 주인공과 영국인 남자들의 댄스 배틀이라든지, 말과 오토바이의 질주와 전투, 다리를 다친 람과 그를 업은 빔의 2인 1조 액션, 마지막의 동물들을 동원한 화끈한 전투 장면도 정말 인상적입니다. 직접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한가득이에요.

간만에 본 인도영화가 너무 신나는 작품이라 즐거웠네요. 라자몰리 감독의 다른 작품도 회자되는게 많던데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여름날 즐길 수 있는 액션영화로 강추입니다 🙂

옷장 속의 윌리엄

옷장 속의 윌리엄 - 리디

읽씹왕자의 작가, 유폴히 님의 또다른 작품. 이번에는 왕자 대신 윌리엄 셰익스피어입니다. 그것도 편지함이 아리라 무려 옷장. 어릴적부터 봐온 옷장으로 튀어나온 미소년이 대문호가 되기 전 배우지망생이었던 그 사람이라, 주인공 줄리아는 정말 비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윌리엄과 함께 때로는 방에서 노닥거리고, 때로는 학교 문화축제에 발표하러 가기도 하고, 엄마를 따라 피렌체로 가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로나를 둘러보기도 하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어릴적부터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줄리아였지만, 이를 계기로 옆집 훈남 헌터와도 다시 가까와지고, 셰익스피어 왕팬인 바네사와도 절친이 되며, 여러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자라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고민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가족관계를 고민하고, 친구관계를 고민하지만 그러면서 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어느 쪽인가를 깨닫는 것. 유폴히 작가님의 장점은 이런 스토리와 감정의 흐름, 그리고 상황을 정말 적절하고 따뜻하게 이끌어가는 점이 아닌가 싶어요. 읽씹왕자에 이어 정말 즐겁게 몰입해서 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 너무 좋네요.

결국 마지막까지 읽으며 궁금했던 것은 과연 줄리아와 윌리엄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 장거리인데다가 시간대까지 떨어져 지내는데 역사도 지켜야 하는 두 사람이 과연 엮일 수 있을 것인가. 뭐, 작가님 성향을 보면 답은 정해져 있겠지만 답보다는 그 과정이 궁금한 독자는 책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네요. 정말 즐거웠고, 그 가운데 은근슬쩍 등장하는 아치와 코델리아는 너무 반가왔습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이 주인공들의 모습을 또 엿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네요 🙂

대우주시대

대우주시대10점
네이선 로웰 지음, 이수현 옮김/구픽

제목만 보고서는 한 50년대에 상상으로 끄적인 달세계탐험 류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는데, 도서관에 있길래 한두장 펼쳐보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대출하고 이틀만에 완독해버린 너무 재미있는 SF. 5부작인데 왜 이게 1편밖에 안나온거야 하고 봤더니 제목때문인지 너무 안팔려서 절판되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진짜 오랜만에 아마존에서 원서로 구입해서 읽어야하나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 이스마엘 왕은 대입을 앞두고 모친을 잃으면서 상업 행성에서 쫓겨나 입대하거나 화물선을 타거나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입니다. 미래라도 이런 경우의 보험이나 복지는 사각지대가 있는듯. 일단 군대는 아니라 화물항에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는데, 자신처럼 우주항해 미경험자는 1/4 몫 (원제인 Quarter Share)으로 등록하게 되어 한 우주선의 식당 보조로 일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본인의 (혹은 작고하신 어머니의) 커피 취향을 기반으로 혁신을 해나가면서 우주선의 운행을 익히고 정박지마다의 특산물을 찾고 이를 다른 행성에서 좋은 가격에 파는 무역을 시작하죠. 처음에는 경험, 그리고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 관심있는 사람들의 조직화 및 지원세력 확보, 자격증 획득 등을 통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는 이야기는 왜 이 번역서 제목이 대우주시대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네요.

너무 재미있는 책이었고, 왜 안팔렸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책이었던듯. 단적으로 제목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대항해시대를 하며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 세계로 무역의 범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나서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제목이긴 합니다만.. 제목만 보고서 그걸 짐작하기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무슨 50년대 SF같은 느낌이라니. 차라리 성계 무역 시리즈라든지 1/4 이라든지 하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원제를 활용한 제목이었다면 잘 팔 수 있었을듯. 1/4x – 1/2x – 1x – 2x – … 이렇게 나가면 재밌지 않았을까 싶기도.

어쨌거나, 1/4몫이면서 이제 1/2 자격증은 다 땄겠다, 다음 편에서 이스마엘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리고 사라진 아빠는 어디서 만날지, 설립한 조합은 함선을 넘어서 함대 단위로 커질 수 있을지, 나중에 선장이 된다면 어떤 독특한 지휘를 할지 등등 궁금하네요. 가능하면 번역서가 나와줬으면 좋겠지만, 일단 아마존을 함 뒤져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