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3년 8월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10점
김상욱 지음/바다출판사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이 물리학을 넘어서 화학 생물학과 인류에 대한 이해까지 시도하는 통섭적인 저작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같은 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공부했던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얼핏 보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과에다가 지금까지 과학 쪽에 많은 관심을 두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공학까지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새로운 뷰를 많이 제시해 주는 멋진 한 편의 책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교수님도 책 전반에 걸쳐서 계속 ‘물리학자 입장에서 본’ 세상에 대한 이해를 시도한 책이라고 하는데 그게 딱 맞는 말이더라구요.

기본적인 책의 시작은 교수님의 책이 그렇듯 원자입니다. 세상을 구성한느 기본 요소로서의 원자의 특징을 수소 원자의 구조로 시작해 양성자와 전자의 특성, 양성자와 전자를 이루는 쿼크를 비롯한 17종의 기본 입자, 그리고 이들의 작용으로 중력과 전자기력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 주기율표에 따라 전자가 채워지는 방식, 원소별 특징을 차근차근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핵분열,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다는 개념이 제시되어요. 우주를 구성하는 별들은 이렇게 수소가 융합하여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아주 작은 입자→매우 거대한 별과 우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제시해요.

이어서 에너지를 얻고 배출하는 기본 원리가 수소의 이온화에서 방출되고 흡수되는 과정을 기반으로 한다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수소 이온을 얻고 잃는 과정을 전자의 결합 과정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학교에서 배웠던 공유결합, 이온결합 등이 이야기되고, 이에 따라 분자의 특성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별을 구성하는 다양한 원소 중 지구의 지각에서 가장 다양한 결합을 자랑하는 산소의 역할과 생명체를 이루는 탄소/수소/산소/질소, 그리고 이들이 결합하여 나타나는 다양한 물질들이 이어지죠.

이런 화학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탄소화합물을 산화시키며 에너지를 얻는 미토콘드리아 기반 호흡과정과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탄소 및 질소를 고정시키는 엽록체의 동식물 순환 구조를 설명합니다. 이부분부터는 각종 사이클에 대한 설명이 좀 대충 넘어가는 느낌이긴 했어요. 그래도 이런 과정이 맨 앞에서 이야기한 수소 이온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과정에 이어지는지라 물리학-화학-생물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통합해서 설명될 수 있다는게 정말 새로왔네요.

후반부는 이제 다세포 동물의 출현과 신경계의 형성, 그리고 인간의 기억과 느낌, 문화의 형성까지 이어지지만 이 부분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직 미지수인 부분이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단순히 생명체를 분류했다고만 알고 있던 계통도가 신경의 형성과 세포별 역할의 구분, 포식동물의 출현과 항상성 유지를 위한 복제/출산 등으로 이어지는 개념은 매우 신선했어요. 이기적 유전자와 사피엔스 등의 최근 서적을 인용하는 부분도 신선했네요.

상당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과학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원자/분자/생물학/다세포생물/인간의 생각 등의 단계별로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는 간극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원자를 아무리 잘 알더라도 물이나 당, 단백질이나 인슐린 등이 왜 그렇게 작용하는지 설명할 수 없고, 분자를 이해하더라도 생물이 왜 항상성을 유지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생물의 에너지 획득 원리를 알더라도 다세포생물의 세포가 왜 다르게 발현하는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생명체의 계통을 잘 이해하더라도 인간은 왜 문화를 만드는지 알 수 없는 것 등등. 그래서 과학의 분야가 나눠지고 인문학이 과학과 분리되어 연구되는 이유는 결국 연구하는 대상의 레벨에 따라 특성이 확 변화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도 이 부분을 제일 강조하신 것 같아요.

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있었네요. 생물 역사의 대멸종을 돌아보면서 한 교수님의 언급입니다. “물론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대멸종이 일어날 때, 최상위 포식자는 언제나 멸종했다. 참고로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 이 거대한 과학적 발견과 역사 속에서 인간이 좀더 겸손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네요. 멋진 책이었습니다.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6점
코니 윌리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코니 윌리스의 크리스마스 단편 모음집. 구입한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어쩌다보니 한여름에 읽게 되었고, 완독하고 나니 슬슬 찬바람이 불 때가 되었다. 코니 윌리스다운 정신없는 말의 향연과 속사포같은 대화가 가득한 이야기인데, 그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버리는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내부에 반영되어 있다는게 포인트. 그래서 예전에 다른 단편집에서 읽어본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읽을 수 있었고, ‘장식하세닷컴’이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음.

표제작인 로켓 무용단은 내용은 좋았지만, 주인공이 너무 추운 길바닥에서 고생만 계속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고, ‘우리 여관에는 방이 없어요’는 그냥그냥 괜찮은 이야기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이야기이긴 했음. 주일 설교로 이상한 차별금지법 이야기 대신 차라리 이 소설을 낭독해주면 훨씬 기독교가 좋은 종교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코펠리우스 장난감 가게는 이 단편집 중 유일한 비극이자 못된 이야기라서 논외입니다. ㅎㅎ

장식하세닷컴의 마지막 이야기같이 모든 오해가 풀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한 행동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 모든 악의가 없어지길 바랍니다, 특히 요즘같은 때에는 말이죠.

일곱 도시 이야기

일곱 도시 이야기6점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시옷북스

은하영웅전설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단편 SF 시리즈입니다. 지축이 뒤틀리는 크나큰 대격변으로 대다수의 국가가 멸망하고 인류가 모여사는 곳이 일곱 개의 도시로 축소된 지구가 배경입니다. 단, 격변 당시 달로 대피한 지배층이 있었고, 이들은 지상의 인류가 함부로 달로 오지 못하도록 감시용 군사 위성망을 돌려놓았기에 일곱 도시 간에는 고고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황당한 제약을 걸어놓았죠. 그래놓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달 도시는 멸망했고, 일곱 도시는 육/해상과 저고도 공군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독특한 세계관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기말적인 상황 하에서도 인류는 늘 그랬듯이 서로 반목하고 균형을 깨고 서로가 절대 강자가 되고자 하는 음모와 전쟁을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을 억지로 떠맡거나, 투덜대면서도 즐기거나, 혹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도시를 전쟁에 끌어들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각각의 단편들이에요. 아퀼로니아의 류 웨이는 은영전의 양 웬리같은 성격의 인물이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보다는 도시간의 역학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안위를 잘 지켜나가는 인물입니다.

다만 그 반대쪽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면모를 보이네요. 아퀼로니아의 군사적 재능을 대변하는 알마릭 아스발은 정통파 무관이고, 프린스 헤럴드의 카렐 슈터밋+유리 크루건 콤비는 적절한 균형과 견제의 모델, 부에노스 존데의 귄터 노르트는 새롭게 떠오른 방어전의 달인입니다. 여기에 뉴 카멜롯의 독설가 케네스 길포드까지. 이들이 뛰어난 지휘력을 가지고 무언가 도시간 구도를 깨보겠다고 하는 반동세력에는 역시 정치가들이 있습니다. 아퀼로니아의 찰스 모블리지 주니어는 정말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꼬드겨 계속 전쟁을 일으키고, 라우드루프는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도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도시들의 균형이란건 정말 묘해서 명장들이 연합해서 전투에 뛰어들더라도 정치적이나 행정적으로 적합한 판단이 병행되지 않으면 모두 실패한 작전이 되는 모습이 계속 묘사됩니다.

어찌보면 작가는 세상만사가 정치지만 그 정치란 것이 머릿속이 꽃밭인 이상향만 제시하는 것이 아닌, 실제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한단계 한단계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고민하고 수급하고 운영해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현실을 봐도 마찬가지인게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계속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지요.

씁쓸한 감상을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었고, 읽을만 한 작품입니다. 다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역시나 은영전에 비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개합니다 : 도쿄R부동산6점
도쿄R부동산 지음, 정문주 옮김/정예씨

업무 관계로 조사를 하면서 읽게 된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어서 올려봅니다. 도쿄 R 부동산이란 회사는 일본의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회사로, 우리나라의 공인중개사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트렌디한 물건을 중개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사원들이 각자의 취향이 있고, 본인이 흥미가 있거나 재미있는 활용방법이 떠오르는 공간이 있으면, 이런 주택이나 건물 등을 자신의 해석을 곁들여서 사이트에 올리고, 이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는 고객과 연결시켜 주는 회사였어요. 따라서 단순한 맨션이나 가정집을 중개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대로 공간을 꾸미고자 하는 고객이나 디자이너, 혹은 직접 카페를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교외에 서핑을 할 수 있는 세컨드 하우스를 원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공간의 형태가 사례로 펼쳐지는 책이라 공간과 전망 등을 보는 재미가 있었네요.

처음에는 도쿄에서 시작했지만, 이후로는 가나가와 같은 교외 통근권, 도쿄 만 쪽의 휴양지, 그리고 후쿠오카 등의 다른 도시까지 컨셉을 확장하고 있는 사이트라 나름대로의 새로움이 있는 중개사라는 생각을 했네요. 독특한 것은 개개인이 자기 취향을 걸고 공간을 소개하고 중개를 하는만큼 급여를 본인의 성과 기여에 비례하여 성과급 형식으로만 받는다는 사실. 하지만 그런 모델에는 100%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기업 운영의 형태를 소개한 도쿄R부동산-이렇게 일한다라는 책은 다 봤지만 별로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더군요. 참고만 하시길요 🙂

도쿄R부동산 이렇게 일 합니다4점
바바 마사타카.하야시 아쓰미.요시자토 히로야 지음, 정문주 옮김/정예씨

2023 클래식 레볼루션 – 김유빈 협연

티켓링크

성남시향과 함께한 번스타인과 브람스의 곡, 협연자로 바이올린의 에스더 유, 플룻의 김유빈이 함께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김유빈님의 연주를 보러 간거였지만 세 곡이 전부 흥미로왔습니다. 에스더 유의 연주와 번스타인의 세레나데는 처음 들었는데 바이올린으로 들려주는 고음 연주가 정말 화려하더군요. 인터미션 전이라 바로 이어진 앵콜곡은 귀에 익은 미국 민요를 편곡한 곡인듯 했어요. 흥겹고 즐거운 연주였습니다 🙂

김유빈의 플루트로 번스타인의 녹턴도 처음 들으면서 놀란게, 중간중간 마치 호루라기를 불듯 표현하는 걸 보고 저런 발성법도 있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장면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반복되길래 정말 신기했네요. 앵콜이 없어 좀 아쉬웠네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었습니다. 도입부에서 갈대밭에 부는 바람처럼 바이올린이 흔들거리면서 보잉을 맞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 브람스 교향곡을 즐겨듣진 않았는지라 4번의 기억이 별로 없었는데, 나중에 찾아서 다시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연주였습니다. 이승원 님의 지휘도 처음이었는데, 명쾌하고 확실한 지휘라 보기도 좋더라구요. 기억해 놔야겠습니다. 앵콜곡은 멋드러진 헝가리 무곡. 누구보다 악장님이 신나서 연주하시는게 인상적이었어요. 🙂

[프로그램]
번스타인 – 바이올린, 현악 오케스트라, 하프와 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 (협연 – 에스더 유)
– intermission –
번스타인 – 할릴, 솔로 플루트, 현악 오케스트라와 타악기를 위한 녹턴 (협연 – 김유빈)
브람스 –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

[앵콜곡]
– 에스더 유의 바이올린
: 앙리 비외탕 / 아메리카의 추억(양키 두들)
: Henri Vieuxtemps / Yankee doodle
– 성남시향
: 브람스 / 헝가리 무곡 제1번
: J. Brahms / Hungarian Dance No. 1

왓 위민 원트 & 패밀리 맨

What Women Want (2000) - IMDb The Family Man (2000) - IMDb

휴가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편안히 재관람한 영화입니다. 그래서 예전 즐겁게 본 기억이 있는 가족적인(?) 영화로 골라봤네요.

왓 위민 원트는 멜 깁슨은 워낙 특유의 흐뭇한 미소와 즐거운 연기가 좋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헬렌 헌트도 멋진 미소와 함께 조금씩 멜 깁슨에게 빠져드는 연기가 너무 자연스럽고 그윽하고 좋더군요. 딸과의 티격태격도 귀여웠고요. 2000년 개봉작인데 그 당시에 이미 여성의 활동을 주력으로 밀기 위해 광고를 맡기는 기업이 나이키란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는데 이미 그 당시에 나이키는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는 기업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좋았습니다.

패밀리 맨은 회사를 다니면서 워라밸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영화였어요. 사회에서의 성공과 행복한 가정의 대비. 물론 두 가지 다 가질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보면 회사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결국 가족적인 무언가를 내려놓고 다니는 것 같아 별로 끌리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그런걸 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죠.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런 혼란에 빠진 주인공 역할을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주네요. 여기에 어울리는 히로인인 티아 레오니, 그닥 연기를 보여줄 타이밍이 별로 없긴 했지만 풋풋한 미모가 너무 좋았습니다. 언제 다시 봐도 좋은 영화여요 역시.

시간이 더 있었다면 트루먼 쇼도 즐겁게 봤을 것 같은데 기회가 닿질 않았네요. 넷플릭스 덕분에 이런저런 고전영화도 편안히 틀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