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6-05-11

캐롤

꽤 멋있는 영화. 얼마 전 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두 인물 사이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캐롤은 두 인물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정도의 차이는 있을것 같아요. 그만큼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존재감이 화면을 지배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선물을 사러 온 캐롤 에어드가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테레즈 벨리벳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캐롤은 모종의 문제로 남편과 이혼소송 중이었고, 아이를 혼자 보살피고 있었죠. 테레즈는 자신의 경험을 되새기며 아이에게 인형보다는 기차 세트를 추천하고, 이에 캐롤은 감사를 표하면서 나중에 식사를 한번 하자는 약속을 전달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잘 맞는걸 확인한 캐롤은 집에 테레즈를 초대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캐롤의 남편은 이를 보고 오해하고 아이를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하면서 캐롤에게 정신병적 문제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냅니다.

이 때 테레즈와 캐롤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여행중이었고, 테레즈 또한 남자친구에게서 둘만의 여행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죠. 여기서 남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주장하고 캐롤과 테레즈의 말은 듣지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무례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물론 언제나 그런 사람이 많은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르지 않은 모양이기도 해요. 그 세계에서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작게 흘린 실마리에 민감하게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마음에 전달하는건 캐롤과 테레즈 서로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캐롤이 테레즈를 남겨두고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다시 되돌아갑니다. 캐롤은 소송을 이어가고, 테레즈는 나름대로 자신이 꿈꾸었던 사진가의 삶을 시작하며 뉴욕타임즈에서 인정받는 자리까지 올라가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먼발치에서 테레즈를 보게 된 캐롤은 자신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보고, 남편과의 협상 자리에서 무언가 결정을 내립니다. 결국 자신이 붙들어야 할게 가족보다는 테레즈라 생각하고 오랜만에 연락을 하게 되고,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첫 장면에서 보여준 씬으로 연결이 되네요.

케이트 블란챗은 캐롤 에어드라는 인물을 너무나 우아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자신감있고 부유한 모습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 놓고싶지 않은 그런 인물을 그려냅니다. 너무 멋진 여신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반면 루니 마라는 사회 초년생이라 때로 우유부단하면서 중요한 결정이라도 떠밀려 선택하는 모습의 테레즈 벨리벳을 정말 자연스럽게 마치 본인이 그런것처럼 그려내죠. 하지만 그런만큼 하나의 일에 뛰어들 때는 온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해나가는 추진력 또한 잘 그려냅니다.

멋진 영화였고, 절제된 두 사람의 대화가, 그리고 그것을 담담히 비추어낸 화면이 모든 일을 다 해냅니다. 두사람의 의상이나 도시의 풍경, 은은한 음악 모두가 잘 조화된 멋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의 루니 마라는 마치 오드리 헵번같은 모습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좋았습니다.

캐롤> 후기 Carol (2015) :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