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시옷북스 |
은하영웅전설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의 단편 SF 시리즈입니다. 지축이 뒤틀리는 크나큰 대격변으로 대다수의 국가가 멸망하고 인류가 모여사는 곳이 일곱 개의 도시로 축소된 지구가 배경입니다. 단, 격변 당시 달로 대피한 지배층이 있었고, 이들은 지상의 인류가 함부로 달로 오지 못하도록 감시용 군사 위성망을 돌려놓았기에 일곱 도시 간에는 고고도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황당한 제약을 걸어놓았죠. 그래놓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 달 도시는 멸망했고, 일곱 도시는 육/해상과 저고도 공군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독특한 세계관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세기말적인 상황 하에서도 인류는 늘 그랬듯이 서로 반목하고 균형을 깨고 서로가 절대 강자가 되고자 하는 음모와 전쟁을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을 억지로 떠맡거나, 투덜대면서도 즐기거나, 혹은 자신의 야욕을 위해 도시를 전쟁에 끌어들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몇몇 인물들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각각의 단편들이에요. 아퀼로니아의 류 웨이는 은영전의 양 웬리같은 성격의 인물이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보다는 도시간의 역학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안위를 잘 지켜나가는 인물입니다.
다만 그 반대쪽에서 전투를 수행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면모를 보이네요. 아퀼로니아의 군사적 재능을 대변하는 알마릭 아스발은 정통파 무관이고, 프린스 헤럴드의 카렐 슈터밋+유리 크루건 콤비는 적절한 균형과 견제의 모델, 부에노스 존데의 귄터 노르트는 새롭게 떠오른 방어전의 달인입니다. 여기에 뉴 카멜롯의 독설가 케네스 길포드까지. 이들이 뛰어난 지휘력을 가지고 무언가 도시간 구도를 깨보겠다고 하는 반동세력에는 역시 정치가들이 있습니다. 아퀼로니아의 찰스 모블리지 주니어는 정말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꼬드겨 계속 전쟁을 일으키고, 라우드루프는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도시를 위기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도시들의 균형이란건 정말 묘해서 명장들이 연합해서 전투에 뛰어들더라도 정치적이나 행정적으로 적합한 판단이 병행되지 않으면 모두 실패한 작전이 되는 모습이 계속 묘사됩니다.
어찌보면 작가는 세상만사가 정치지만 그 정치란 것이 머릿속이 꽃밭인 이상향만 제시하는 것이 아닌, 실제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한단계 한단계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고민하고 수급하고 운영해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현실을 봐도 마찬가지인게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계속 그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 말이지요.
씁쓸한 감상을 되새기게 하는 소설이었고, 읽을만 한 작품입니다. 다만 소설로서의 재미는 역시나 은영전에 비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