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8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서울문화사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울 때에는 거의 존재조차 모른 인물을 시오노 나나미라는 팬심 가득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깜놀하는 과정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전작인 십자군 이야기에 이어 당시 십자군을 주창한 교권의 수장 교황에게 맞서 인간의 이성적인 면에서의 법치를 주장하며 속권을 확립하고자 애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이 책의 주인공인 프리드리히 2세였네요.

작가는 항상 보면 개인으로서 시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주체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며 대외적으로 조율을 잘 하는 인물을 선호한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일반적인 호감이 아니라 팬심을 넘어 빠심까지 드는 것 같아요. 로마인 이야기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그리스인 이야기의 페리클레스, 십자군 이야기의 사자왕 리처드, 로마의 체사레 보르지아,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베네치아 통령들이 그 대상이 되었던 것 같고 이제는 신성로마제국 차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아랍과의 균형감각을 지니며 자란 소년기,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를 재패하며 북부 이탈리아의 방해를 넘어 독일령에서 숙부의 견제를 뚫고 무사히 황제로 선출되는 과정을 거친 청소년기, 그리고 북부 독일과 남부 이탈리아를 아우르며 교황의 견제를 무마하며 봉건제를 넘어선 군주제와 법치체제, 교육기관 설립 등의 개혁을 추진하는 청장년기를 따라가며 봉건 체제 하에서 르네상스를 앞서간 계몽 군주 선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꽤 두터운 두 권이 쑥쑥 읽히는 것은 작가의 팬심 덕분이기도 하고 신선한 스토리 덕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 어렴풋하게만 보였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모습이 십자군 이야기와 함께 엮어서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네요. 어떻게 보면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6점
이꽃님 지음/문학동네

죽이고 싶은 아이를 쓴  이꽃님 작가의 문학동네 수상작입니다. 조금 더 친절하고 애정있는 타임슬립 스토리를 다루고 있어요. 주인공은 엄마 없이 무관심한 아빠 슬하에서 자라고 있는 여중생 은유. 어느 날 자신의 미래에 편지를 쓰는 이벤트에서 쓴 편지가 어떤 초등학생 은유(동명이인!)에게 전달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은유가 있는 곳은 2020년대, 아이가 있는 곳은 1980년대란 것이죠. 40년간의 시간 차이를 넘어선 펜팔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중학생 은유는 독립을 꿈꿔나가고 초등학생 은유는 훨씬 더 빠른 시간이 흘러가며 나이가 역전이 되어갑니다. 둘 사이에서 흘러가며 접점을 이루는 이야기가 궁금증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중학생 은유에게서는 왜 엄마가 없는지, 왜 아빠는 그렇게 무관심하고 새로 만나게 된 새엄마 후보는 왜그리 아는척을 하는지 등등의 궁금증이. 초등학생이며 나중에 성인까지 이어지는 1980은유에게서는 이 아이가 어떻게 커나가고 어떻게 중학생 은유의 부모님을 추적하는지, 그리고 과연 현재의 은유와는 어떤 관계가 맺어질지 등이 기대되고요. 이런 의문을 배경에 깔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때로는 SF처럼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이어져 재미를 주네요. 물론 SF에서 이런 설정을 많이 본 사람들은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즐겨 쓰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이에게는 죽이고 싶은 아이보다 더 추천해주고 싶은 내용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가족간의 애정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학생간의 갈등을 다룬 책보다는 좀더 마음이 편하네요.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죠 🙂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8점
이다 지음/현암사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님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1년 동안 이사간 집 주위를 다니며 관찰한 자연 – 새들과 나무들, 꽃과 구름과 하늘 등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나간 이야기입니다. 산과 가까운 집이기에 날아든 물까치 무리들과 가까이 있는 불광천에 어느날 나타난 집오리 형제 세 마리의 성장과정, 종종 나가는 산책에서 수집했던 다양한 깃털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나무의 모습과 몰랐던 종을 찾아나가는 과정까지,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주변의 동식물을 따스한 눈길로 관찰하고 기록해나간 모습에 독자의 눈도 주변을 새롭게 보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꽤나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할 수 있었고, 이런 기록을 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책 말미에 수채화 물감으로 표현한 다양한 자연의 색상도 정말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펴볼 수 있었고 말이죠. 사실 시리즈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죠. 동일한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Remembering Dvořák – 드보르자크 서거 120주년

함신익과 심포니송, 드보르작 서거 120주년 기념 공연

간만의 클래식 연주회였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다음 곡 중 하나로 드보르작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연습하고 있는데, 마침 지휘자님이 좋은 공연이 있다고 함께 보면 어떨까 하셔서 멤버 중 10여명이 모여 가게 되었네요.

첫곡인 로망스는 처음 들어봤는데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것이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할 때 들으면 참 좋겠다 싶었습니다. 두번째 곡은 드보르작에서 영감을 얻은 현대작곡가의 곡 초연으로, 함신익 지휘자님과 심포니송에서 위촉한 곡으로 연주 전에 설명을 많이 해주시더군요. 처음으로 공개하는 곡의 초연은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곡은 현대곡답게 어렵고.. 신기했다고나 할까요? ㅎㅎ

그리고 기다리던 교향곡 9번. 아, 정말 잘합니다. 유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직접 연습하고 들어보니 악절 마디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기본적인 연주 속도부터가 틀리고 연주자들의 손길에 머뭇거림이 없어요. 이런게 프로구나 싶었습니다. 연습하는 곡을 현장에서 들어보는 경험은 처음인데 정말 좋은 경험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앵콜곡은 슬라브 무곡 8번, 신나게 들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이었고, 즐거운 롯콘 나들이었네요. 감사합니다~

[Program]
Antonin Dvorak(1841-1904) : Romance for Violin and Orchestra in f minor, Op.11
드보르자크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바단조, 작품번호 11

Deqin Wen(B.1958) : Symphony No.1 “Paraphrasing Dvorak”(World Premiere)
드칭 웬 : 교향곡 제 1번 드보르자크를 기리며(세계초연 위촉곡)

– Intermission –

Antonin Dvorak(1841-1904) :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From the New World”
드보르자크 : 교향곡 제 9번 마단조, 작품번호 95 “신세계로부터”

[앵콜곡]
– Dvorak / Slavic Dance Op. 46 No. 8

경성 맛집 산책

경성 맛집 산책8점
박현수 지음/한겨레출판

예전 재미있게 읽었던 식탁 위의 한국사와 비슷한 감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해서 도서관에 눈에 띈 김에 바로 빌려보았습니다. 식탁 위의 한국사가 조선 말기의 느낌이 강하다면 이 경성 맛집 산책은 일제시대, 특히 당시 서울 시내의 주요 식당 중심으로 1920~30년대 유행했던 메뉴들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당시 사료와 소설, 삽화 등을 배경으로 당시의 외식 문화를 살펴보는 형태라 특이하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일개 식당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질줄 알고 그 자료를 남겨놨겠어요. 나중에 관심있는 사람이 근근이 자료를 추적해 나갈 수밖에 없었을듯 합니다.

일제 시대인만큼 서구의 식탁 문화가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한식보다는 서양의 코스요리가 고급 요리로 들어오게 된 과정 (조선호텔 식당, 청목당), 돈카츠나 카레라이스처럼 일본화된 서양 식당들 (미스코시백화점, 화신백화점), 그 외 대표적인 일본/한국/중국식당들 (화월, 이문식당, 아서원 등)이 소개됩니다. 당시 식사 문화뿐만 아니라 물가, 그리고 특히 시내의 모습이 현재와 어떻게 달랐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말로만 듣던 화신백화점이 한국 자본을 바탕으로 세워진것이고 현재의 종로타워 자리라는것. 조선호텔은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예전부터 식당이 유명했다는것, 옆의 낙랑파라라는 카페가 현재 플라자호텔 자리이고 미스코시백화점이 신세계가 되었으며, 아서원은 땅을 옆의 반도호텔에게 넘겼는데 현재 롯데호텔/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 등등이 신기했네요.

그러면서도 식당들의 자취를 찾기 위해 참조해서 소개하던 소설들이 참 지저분해서 이런게 한국 문학으로 남아있다는게 참 씁쓸하기도 했어요. 생각해보면 신문에 연재하면서 잘리지 않기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남발하긴 했던듯. 뭐 다들 첩질에 불륜에 강제추행에.. 하긴 막장드라마가 괜히 나온게 아니라 저런 미디어가 현재는 TV로 옮겨진것 같기도 하네요. 그 가운데도 나름 기억에 남는건 심훈. 상록수의 계몽소설작가로만 알려져있던 그가 사실은 이수일과 심순애가 영화화되었을 때 주연배우로 연기도 했다는 것. 게다가 다른 작품에서는 감독으로 영화를 직접 찍기도 했다니 정말 다방면의 재주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었던것 같아요. 점차 잊혀지는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만한 책이어서 재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