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한...

드디어 봤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을 간만에 보네요. 확실히 여기저기 해석하기 어려운 스토리지만 보는 재미는 쏠쏠한 작품이었어요. 한컷 한컷에서 그려지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정감있는 화면이라니. 그러면서도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지루하거나 할 틈이 없는 솜씨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판은 떠나실 수 없을 것 같아요, 감독님.

예전에는 몰랐지만 아마도 센과 치히로부터는 조금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상징들을 여기저기서 펼쳐내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죽하면 작품을 보면서 블레이드 러너가 떠오를 정도였으니 말이죠. 단순히 보면 전쟁통 속에서 화재로 엄마를 잃은 아이가, 이모 집에 와서 묘한 환상세계로 빨려들어가 거짓말장이지만 순박한 왜가리, 음흉스러웠지만 젊을때는 믿음직스러웠던 아줌마(할머니?), 그리고 수수께끼같은 불의 힘을 다루는 소녀를 만나며 실종된 새엄마(이모)를 구출해내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왜 주인공 마히토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냈는지, 새엄마는 왜 스스로 환상세계로 들어갔는지, 성 안에서 만난 돌은 왜 마히토를 끌어들이는지, 펠리칸과 앵무새들은 어째서 그 세계에서 공격적인 집단이 되었는지 등이 알듯말듯.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한번 여기저기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기도 해야 할 것 같고, 마히토의 어머니가 남긴 책 – 요시노 겐자부로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도 한번 보고싶어지기도 하네요. 마지막 순간에 잃은 어머니에 대한 미련을 끊어내고, 한 가족이 된 마히토와 이모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마무리였기에 오히려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좀더 찾아봐야겠어요.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메가박스중앙㈜ 제공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메가박스중앙㈜ 제공

바비

THE BARBIE MOVIE 2023 B VERSION ORIGINAL CINEMA FILM PRINT PREMIUM POSTER

언제 보려나 하다가 드디어 봤네요. 이런 이야기였구나 싶었고, 예상외로 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오호 하기도 했어요. 초반의 닭살만 극복한다면 중후반은 후루룩 술술 넘어가는 느낌.

초반은 바비랜드의 묘사로 시작됩니다. 꿈같은, 세상과 동떨어진, 바비들만이 주인공인 세계. 하지만 이 완벽하기만 하던 바비만을 위한 세계에 균열이 시작되고, 이는 현실세계에서 한 모녀가 느끼는 바비에 대한 감각과 우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바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로 들어와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우울함을 투영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복귀하면서 이야기가 해결되나 싶었지만..

사실 문제는 바비랜드 전체에 대해 우울함을 느끼고, ‘자신이 유일한 켄이 아님에’ 지속적으로 실망해왔던 켄이었어요. 용감하게 ‘특별한’ 켄이 되고자 현실세계로 따라왔다가 가부장주의의 맛을 보게 된 켄. 바비랜드로 돌아와 그곳을 켄돔(Kingdom → Kendom)으로 바꿔버립니다. 바비는 정신이 회까닥 나갔던 다른 바비들의 마음을 돌려 이런 켄의 음모를 저지하죠. 그리고 모든게 원래로 돌아가나 했지만, 그곳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건 바비들과 켄들의 몫, 그리고 사람들의 몫이기도 한걸 보면 정반합이란 개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여성의 권리와 차별에 대한 극복의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등 구미에서도 여전한 이슈인가봅니다.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여왕 폐하의 해군

여왕 폐하의 해군10점
데이비드 웨버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데이비드 웨버의 아너 해링턴 시리즈 2편입니다. 2010년에 원서로 1편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을 읽었었는데, 번역판을 미루고 미루다가 절판이 된 후, 어쩌다 보니 중고로 1, 2부를 구하게 되어 다시한번 번역판을 정독할 수 있었네요.

맨티코어와 헤이븐의 대결이라는 커다란 대결구도 속에서, 1편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은 맨티코어의 변방이지만 웜홀 중계점으로서 중요한 전략 거점인 바실리스크 스테이션에 아너 해링턴이 파견되면서 행성 행정부와 웜홀 감시 등 행정 재편성을 추진하는 동안 헤이븐이 행성계에 심어놓은 음모의 싹과 화물선으로 파견한 대형 전함과의 전투를 실감나게 그렸었지요. 2편 여왕 폐하의 해군(The Honor of the Queen, 1993)은 조금 더 나아가 헤이븐과의 완충지대인 옐친 항성계에 각종 과학기술과 호위함을 포함한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옐친 내 주력인 그레이슨과 극단주의 종교세력인 마사다 간의 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다룹니다.

종교 기반의 정착민이 주력인 그레이슨과 마사다는 과학기술만 뒤떨어지는게 아니라 극단주의적인 남성우위의 사회입니다. 마사다는 더 심하죠. 거기에 나타난 아너 해링턴이라는 여성 함장은 그레이슨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아너는 갈등을 심하게 하지 않도록 화물 호위를 자청해 잠시 항성계를 떠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마사다는 헤이븐의 힘을 등에 업고 두 대의 최신 전함을 앞세워 그레이슨을 침략하고, 남아있던 맨티코어의 쿠르보제 제독과 그레이슨의 야나코프 제독은 나란히 전사하게 됩니다. 돌아온 아너 해링턴은 순양함과 구축함만으로 거대한 헤이븐의 순양전함과 결전을 벌이게 되죠.

작품 속에서 남성우위의 허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아너 해링턴의 영웅적인 분투를 통해 그레이슨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해링턴을 통해 여성의 힘과 가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됩니다. 반면 마사다는 외부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자원과 인력조차도 깎아내리며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앞으로 스러져가게 될 것이 눈에 보이네요. 이 책을 읽으며 보게 된 영화 바비의 시나리오와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한게, 옐친 항성계나 현재 미국이나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에요.

앞으로 제대로 된 인재 등용과 인력 운용,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지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음 편인 순양전함 나이키는 도서관에서 빌려볼 예정이에요. 중고서적을 두배의 가격으로 사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말이에요 🙂

바실리스크 스테이션10점
데이비드 웨버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위키드

Amazon.com: Trends International Wicked - One Sheet Wall Poster, 34L x 22.4W, Unframed Version: Posters & Prints

간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입니다. 아이가 친구랑 본 뒤 너무 좋아해서 엄마아빠와도 봐야한다는 바람에 끌려가서 보게 되었는데, 기대를 넘어 매우 재미있게 보았네요. 여기저기서 이야기 듣기로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원래 오즈의 마법사를 좋아하는데다가 위키드 원작 및 뮤지컬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매우 신선한 내용이어서 즐거웠어요.

군데군데 오즈의 마법사 본편을 위한 떡밥이 여기저기에 깔려있는 데다가 서쪽마녀가 사실은 사악한 마녀가 아니고, 글린다가 매우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라 서쪽마녀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 위대한 오즈의 정체와 노란 길이 만들어진 과정, 날개달린 원숭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그리고 동쪽마녀는 누구인가 등이 여기저기서 드러납니다. 살짝 한마디로 언급되는 몸비라는 이름도 깜짝 놀라게 하고 말이죠.

뮤지컬 위키드를 너무 좋아해서 역을 맡았다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와 연기도 열정이 가득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고, 주인공 엘파바 역의 신시아 에리보도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마지막의 Defying Gravity 음악을 배경으로 까만 망토(커튼?)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안맞는 극과 극이었다가 나중에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나가는 친구로, 그리고 에머랄드 시티에서 헤어지며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채로 헤어지는 글린다와 엘파바의 모습이라든지, 무언가 실연의 폭탄을 품고 연애중인 동생의 불안함, 그리고 마담 모리블(양자경)은 과연 어떤 음모로 나타날지 등 후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도 가득하고 말이죠.

빨리 후편이 개봉해서 전편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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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58점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화과자를 소재로 아사쿠사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화과자를 맛보기도 하고 맛보여주기도 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어릴적부터 화과자를 접하며 자라난 화과자점 청년 구리타. 학생시절 반항하면서 동네 주먹계를 주름잡기도 했지만 부모님 사후 마음을 다잡고 예전의 맛을 살리고자 직원들과 구리마루당이라는 화과자점을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아사쿠사의 한 커피점 마스터에게서 사연이 있어보이는 아오이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가져온 사건을 화과자의 힘(?)으로 해결하게 됩니다. 아오이는 아사쿠사의 다양한 풍물에 관심이 많아 종종 다양한 장소를 안내해주기도 하면서 친해지고 그 가운데 구리타는 어릴적부터의 친구, 라이벌, 지인 등과 새로운 사건을 마주치게 되지요. 이런 식으로 둘은 서로의 인간관계를 알게 되고 아오이가 어떻게 화과자에 대한 지식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지금은 화과자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등등의 메인 스토리가 흘러가지요.

잔잔하지만 메인 스토리가 확실하고, 곁길로 새지 않아 탄탄한 구성 덕분에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더불어 여기저기서 보고 몇몇가지는 먹어보기도 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던 화과자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도 약간이나마 더 늘릴 수 있기도 했고,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드는 소설이었어요. 특히나 여름에 먹는 시원한 화과자들은 한번 맛보고 싶더군요.

다섯 권의 자그마한 책이지만 따뜻하게 마음을 다스려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