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17 –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
별 기대 없이 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린 또 한 권의 SF입니다. 폴라북스 미래의 문학 시리즈가 의외로 꽤 괜찮은 책들이 많아요. 전에 읽었던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도 있고, 원서로 봤던 바실리스크 스테이션, 구입하고 아직 못 읽은 타임십, 생명창조자의 율법도 모두 이 시리즈네요. 어릴적 읽었던 트리피드의 날도 보고싶은데 전자책으로는 왜 안나오나 하고 있구요.
동맹과 침략자로 나눠진 우주, 특정 파괴활동이 일어날 때마다 수신되는 암호를 해석하기 위해 저명한 시인이자 언어학자, 우주선 선장인 리드라 웡이 호출됩니다. 리드라는 이것이 암호가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는 시점을 다르게 해주는 새로운 언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 언어 – 바벨17 – 의 근원을 탐색하기 시작해요. 선원을 모집하고, 함정에 빠져 헤매이고, 적들과 전투하는 가운데 붓처라는 독특한 인물을 만나 이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잡게 되지요.
비교적 많은 분량은 아니면서도 이 한 편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여러 별을 넘나들고 많은 사람들과 조우하면서 눈에 보는 듯한 영상을 그려줍니다. 그러면서도 언어의 힘, 해석의 구조라는 면에서 생각할 거리 혹은 연구할 거리를 던져주네요. 언어란 무엇이길래 / 이름이란 무엇이길래 딜레이니나 르귄 같은 작가들이 이 소재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싶을 정도에요. 그러면서도 재미는 있어서 간만에 짬짬히 시간 날때마다 읽어 이틀만에 완독. 빨리 한권을 읽어버리는 기분을 간만에 느꼈습니다.
딜레이니의 다른 작품을 볼까 해서 찾아봤더니 번역된 작품은 이거 하나인가보네요. 원서로 읽을까 하면서도 문장과 단어의 홍수 속에서 읽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만.. 한번 찾아보기나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