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요기획이라는 TV다큐에서 소나무가 마치 수묵화처럼 펼쳐진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작가는 소나무숲에서, 제주도 오름에서, 남도의 바다에서 자연을 흑과 백을 농담을 조절해가며 그린 듯한 사진작품을 보여주더군요. 그분이 배병우 – 마침 전시가 있기에 (수요기획도 그래서 다룬 것이겠지만) 날을 잡아 덕수궁을 찾았습니다.
덕수궁 미술관은 잘 찾지 않던 곳이었는데, 올해는 보테로전을 보고 얼마 안되어 찾게 되었네요. 하지만 같은 장소라도 다른 느낌. 화려한 색채의 보테로와 흑백 수묵화같은 배병우의 작품은 장소마저도 다른 곳으로 바꾸어놓았어요. 1층의 창덕궁과 알함브라는 유라시아의 양 끝에 위치한 나라에서 한편으로는 비슷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두 장소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빨간 단풍 사이로 보이는 한옥의 붉은 기둥, 눈쌓인 정원의 호수와 누각, 황금빛의 조명이 비치는 알함브라의 내원, 오묘한 무늬의 창으로 비치는 하얀 햇살, 그리고 보랏빛 하늘에 걸린 조각달이 두 장소의 정서를 하나로 만들더군요.
2층은 배병우씨의 대표작인 소나무, 그리고 바다와 섬을 볼 수 있었습니다. 1층이 컬러라면 2층은 흑백이랄까요? 하지만 흑백 사진은 그 선과 농담을 통해 소나무를 수묵화로, 제주 오름을 후안 미로같은 커다란 추상화로 바꾸어 놓았네요. 커다랗게 한 면을 차지한 오름 3연작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다리아픈줄도 모르고 몇시간을 보다가 나와보니 덕수궁을 배경으로 서울 하늘에도 달이 떠있더군요. 은은한 조명을 배경으로 떠올라 있는 덕수궁 건물들은 처음 보는지라 참 새로왔습니다. 따스한 느낌이 들어 낮과 전혀 다른 느낌이 정말 좋더라구요. 배병우전과 덕수궁, 좋은 기획 좋은 전시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