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은 실패했지만 작화와 음악이 꽤 좋았다고 소문났던 폭스 애니메이션. 어쩌다보니 기회가 닿아 이제야 봤네요.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면서 행방불명되었던 공주 아나스타샤를 찾는 황태후와, 황태후가 내건 상금을 노리고 고아 소녀를 데리고 황태후가 망명한 파리로 가는 드미트리와 블라디미르와의 여정을 다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법으로 왕가를 몰락시킨 라스푸틴의 암수, 주인공 남녀가 진짜 공주임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아나스타샤의 선택까지 스토리 자체는 꽤 볼만해요. 다만 스토리 자체가 민중의 혁명 과정을 라스푸틴의 음모로 폄하하는 느낌이 강해 역사왜곡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치명적인 면이 있을 뿐이죠 -_-;
소문난 만큼 중간중간 보이는 작화가 미친듯한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90년대라는 환경이라 당연히 한땀한땀 그린 셀화에 3D CG가 간간히 들어간 형태인데,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듯한 궁전의 무도회 씬 같은 경우는 정말 감탄했어요. 마치 쇠라의 점묘화를 보는 듯한 느낌. 덕분에 러빙 빈센트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음악도 자연스럽게 장면과 어울리는데다가 귀에 잘 들어오는 멋진 연주가 좋았구요. 나중에 보니 성우도 아나스타샤가 멕 라이언, 드미트리가 존 쿠삭이었더군요. 아 그리운 이름들이여 ^^ (게다가 아역 아나스타샤가 어릴적 커스틴 던스트라고..)
이 작품을 디즈니+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도 재밌었습니다. 디즈니에 대항해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을 대거 채용한 폭스에서 과감하게 투자해 만든 작품이어서 디즈니스러운 그림체가 많이 남아있었다는 점 (그래서 마나님은 보면서 디즈니 신데렐라/백설공주같은 인물 움직임이라고..), 그리고 이후 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접으면서 사업부를 디즈니에 매각했고, 덕분에 디즈니가 경쟁작이었던 아나스타샤를 작품목록에 품게 되었으며, 그래서 팬들은 아나스타샤를 디즈니 프린세스에 끼워넣기도 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했어요. 그만큼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러빙 빈센트를 봐야겠어요. 아직 넷플에 있으려나 다른 플랫폼을 찾아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