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발론의 안개 1 – 매리언 짐머 브래들리 지음, 나채성 옮김/이야기(자음과모음) |
매리언 짐머 브래들리의 83년작 소설입니다. 아더왕 이야기를 남성이 아닌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독특한 작품이죠. 아더 출생 이전 아발론의 여왕이었던 비비안과 멀린으로부터 시작해서 엠브로지우스, 유서, 아더로 이어지는 영국의 고대사, 기독교의 세력 확장, 그로 인한 아발론의 여신 신앙의 명멸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재미있다’ 고 하긴 어렵겠지만 흥미로운 작품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중심 인물인 모게인, 비비안, 아더, 란슬롯, 기네비아(작품에서는 그웬와이파라고 하더군요) 등이 모두 독특하고 강렬한 멋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예전에 알았던 아더왕 이야기와는 달리 각각의 인물간의 혈연관계도 확실하게 묘사되구요. 물론 작가의 상상이 개입된 부분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통해 흐릿하게만 느껴지던 각 캐릭터가 좀더 손에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총 네 권이지만 읽기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워낙 장황한 이야기를 그리는 대하소설인데다가 1권이 지나기 전까지는 이야기의 배경 설명이 이어지고 큰 줄거리가 시작되지 않거든요. 단지 아더를 태어나게 하기 위한 비비안과 멀린의 계획이 펼쳐지죠. 하지만 비비안이 키운 아더의 누나 모게인이 아발론을 뛰쳐나오면서부터 그웬와이파로 대표되는 기독교와 모게인으로 대표되는 여신신앙 간의 갈등 양상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속도가 붙습니다. 아더는?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뿐이랍니다 -_-
그 후로 이어지는 비비안의 동생(모게인과 아더의 이모)인 모거즈의 왕위 찬탈 음모, 성배 탐색에 얽힌 진실, 그리고 가라하드의 죽음과 모드레드의 배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하나의 줄거리로 통합되어 그 뒷모습을 드러냅니다. 기존의 이야기를 최소한으로 끌어들이면서 그 뒷면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 솜씨가 멋졌습니다.
얼마 전 아더왕 이야기가 제대로 출판되어 나온 것 같더군요. 한번 보고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생기고 있습니다. 기대되는군요 🙂
덧, 작가인 매리언 짐머 브레들리는 99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습니다. 책은 2000년에 나왔는데 작가 소개에서 ‘두 아이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살고 있다.’ 고 되어 있군요.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