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봐도 전혀 어울려보이지 않는 이 두 편이 갑자기 보고싶어 TV 설치하자마자 돌려봤다.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1939)
주디 갈란드의 오즈의 마법사는 향수를 자극한다. ‘Ding Dong the witch is dead’ 라든지 ‘Somewhere over the rainbow’ 라든지 즐겁고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그려놓은게 뻔히 보이지만 너무나 동화적이기에 그림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지는 그런 배경, 그리고 인형탈쓴게 너무나 티나서 더 정겨운 그 캐릭터들.
명작일수록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본 기억은 거의 없는 법, 오즈의 마법사 역시 처음부터 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세피아빛의 캔자스 장면을 보다가 채널을 돌린 적도 있었고, 노란 벽돌길이 시작되는 곳을 보여주는 장면이 너무 예뻤던 기억도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양귀비꽃밭이 있었고, 음침한 마녀의 성을 배경으로 날아오는 날개달린 원숭이도 다시보니 귀엽기만 하더라.
가끔씩 어릴적 향수가 떠오를때 보고싶은 영화. 스토리를 많이 단축했지만, 영화로서는 이정도가 딱이라고 기억되는 그런 작품이다.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오즈의 마법사와는 반대로 너무나 모던한, SF의 한 장을 열어준 영화. 극장에서도 두번, DVD로도 몇번을 보았지만, 질리기보다는 오히려 가끔씩 기억나 다시 돌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며칠 전에도 갑자기 모피어스가 감금된 빌딩으로 네오와 트리니티가 쳐들어갈 때의 강렬한 음악이 떠올라 별수없이 돌려보게 되었달까.
Flow-mo 기법을 이용해 타일에서 날리는 돌조각을 표현해내고, 사방에서 터지는 총탄과 탄피 쏟아지는 소리를 입체음향으로 듣는 그 기분도 가끔씩 갑자기 그리워지는 느낌들. 그때부터 이어지는 액션의 물결 – 헬기 기관총으로 빌딩 유리창을 부수고 모피어스를 구출하고, 트리니티를 추락하는 헬기에서 구해내고, 모두를 보낸 후 스미스와 지하철에서 격투하는 장면, 그리고 죽음과 부활까지. 쉴새없이 마무리로 이어지는 장면을 중간에서 끊는건 불가능한듯.
2편도 3편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 매트릭스는 1편만으로도 충분하다. 가끔씩 그 빨간약을 먹고 이 세계로 빠져들면 충분. 워쇼스키도 이때가 가장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