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지음/자이언트북스 |
믿고 보는 김초엽의 SF입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좋았지만, 단편이라 아쉬움이 중간중간 묻어났는데, 이 작품은 그 아쉬움을 확실히 잡아주네요. 정말 믿고 보는 김초엽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푹 빠져서 며칠만에 주르륵 읽어내렸습니다.
나노봇의 이상증식으로 더스트 폴이라는 오염 안개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인류의 90%가 사라집니다. 그 와중에 자신만 살아남겠다는 마음으로 돔에 들어간 사람들과, 무슨 까닭인지 더스트에 대해 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여러 돔을 경유하며 생필품을 확보하려 하지만 실험대상이 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나갑니다.
간신히 더스트 폴의 영향을 벗어난 세계, 예전 일어난 더스트 폴의 원인과 이를 이겨낸 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고, 화자인 아영은 어릴 적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엔지니어스러운 동네 할머니 이희수와의 기억을 가지고 에티오피아에서 더스트를 치료하던 마녀로 불리던 나오미를 만나 더스트를 이겨낸 식물과 그 식물을 개발하고 가꿔온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에 절망하기보다는, 이기심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인간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간의 교류,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사람들과 떨어져 그들을 위한 작업을 이어가는 연구자, 그리고 그를 보살피던 엔지니어 등 따뜻하지만 교류에는 서투른 인간냄새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립니다. 어찌 보면 노래하는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의 조금 더 인간적인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영화화되어도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런 이야기도 들리는 것 같네요. 섣불리 건드리지 말고 숙고해서 정말 좋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간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