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언 연대기 : 용기사 3부작 1 – 앤 맥카프리 지음, 김상훈 옮김/북스피어 |
기나긴 3부작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세 권을 겨우 모아 읽기 시작했는데 그 두께에 놀라면서도 환타지와 SF를 넘나드는 멋지고 탄탄한 설정의 세계관이 잘 자리잡은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드래곤이 사는 세계 퍼언, 하지만 그 이름 자체는 보잘 것 없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행성(Parallel Earth, Resources Negligible)이기에 잊혀진 세계였고, 그래서 과학기술은 잊혀지고 중세같은 몇몇 성을 중심으로 한 마을이 힘을 겨루거나 협력하는 세계가 되어 있었네요. 드래곤과 이들을 다루는 드래곤라이더들은 성과 별도로 용굴이라는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고, 그들의 역할은 주기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사포라는 이름의 독극물을 불태워 막는 역할이었습니다. 사포는 생명체를 모두 불태우고 땅을 불모지로 만들어버리는 저주였기에 이들이 땅에 도달하기 전에 공중에서 막아야 하는 임무가 있었죠. 하지만 사포가 내리지 않는 휴지기가 너무나 길어지자 성은 용굴을 배척하고 급기야는 여러 성을 정복하고 용굴을 모두 배제하고자 하는 야심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사포가 다시 내릴 것이고 용굴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성주의 핏줄의 한 소녀가 있었고, 그 소녀가 새로운 여왕 드래곤의 주인이 되어 야심가를 막고자 하는 내용이 1부 퍼언의 용기사의 내용입니다. 레사라는 성주와 드래곤라이더의 핏줄을 모두 타고난 이 소녀는 야심차게 여왕 드래곤의 파트너가 되면서도 기존 용굴의 관습에 물들지 않았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비행을 겁내지 않는 여왕 기사로 탈바꿈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발견한 용굴령과 함께 사포가 내리는 주기를 발견하고 이를 성과 공유하여 성을 독점하려는 야심가를 몰아내지요.
2부에서는 새로운 위험이 도래합니다. 기나긴 사포의 휴지기가 끝나면서 엄청난 양의 사포가 내릴 것이 예상되지만 쇠퇴한 현재의 용굴의 드래곤 전력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드래곤의 능력 중 가본 곳의 이미지-심상을 통해 순간이동을 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힘으로도 수가 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지요. 레사는 이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성에 장식된 옛 태피스트리에 수놓아진 용들의 전투를 보고서 그 시대 그 장소로 시공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 전의 여러 용굴을 모두 데리고 현대로 돌아오지요. 구시대와 신세대의 용이 모두 모여 사포를 소탕하는 장면이 2부 드래곤 탐색의 백미입니다.
3부 백색 드래곤에서는 하얀색의 새로운 드래곤이 등장합니다. 금색 여왕 드래곤, 전투 전문이면서 금색의 짝이 될 수 있는 청동, 수컷 갈색, 암컷 녹색 드래곤이 전부였는데 하얀색의 드래곤 루스가 태어나고, 게다가 그 파트너가 된 것은 차기 성주로 내정되어 있는 잭섬이었죠. 성주가 위험한 드래곤라이더가 되다니! 하지만 루스와 잭섬은 1,2부의 주인공인 레사보다 적극적이고 청소년다운 객기로 별별 일을 다 벌이다가 의외로 괜찮은 성과를 거둡니다. 구시대 드래곤라이더와의 갈등을 막아내고, 남방의 드넓은 대륙의 규모를 밝혀내는가 하면 퍼언의 역사를 시작한 초기 이민자들의 흔적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서 철없던 소년이 좀더 책임질줄 알고 성숙하게 성장해가는 모습도 보여주지요.
3부를 모두 완독하고 드는 생각은, 발표된지 꽤 된 작품인만큼 주인공의 여성관이 은근히 고루하다는 면이 있다는 인상이긴 하네..란 점. 하지만 그 세계관의 규모와 설정이 매력적이라 참고 봐줄만하다는 생각. 그리고 3부에 걸친 그 엄청난 규모의 텍스트를 읽어냈음에도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겠네요. 조상들은 왜 퍼언에 정착했는지, 불도마뱀이란 작은 생물을 어떻게 드래곤으로 바꿔냈는지, 움직이지 않는 세 개의 별은 무엇인지, 그리고 남방에 파묻힌 초기정착민의 시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등등. 그 비밀을 알아내려면 원작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한참 뒤가 될것 같습니다. 일단 꽤 긴 시간동안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할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