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중경삼림(重慶森林). 왕가위란 감독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씨네하우스 예술관 맨 앞자리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색상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화려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비디오가게를 뒤져가며 열혈남아(旺角卞門, 1988),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를 거쳐 동사서독(東邪西毒, 1994)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뒤늦게 화양연화(花樣年華, 2000)를 보았습니다. In the mood for love. 단지 주말드라마같은 시놉시스만 알고서 왕가위란 감독은 잊고 있었습니다. 10년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쓸쓸했습니다. 사랑이 있고, 만남이 있고, 암울한듯 감겨오는 진한 색상이 있었지만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말하지만, 그 시절이 지나고 나면 이제 아스라한 안개낀 기억만 더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마지막을 불꽃처럼 태워올리며 절정과 함께 보내는 것이 더 시원할 것을. 치사하고 구질구질해보일지라도, 내 삶에 있어서는 아직은 화양연화의 시절이 오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아직은 후회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날을 바라며 살고 싶습니다.
덧, 장만옥. 처연한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살려내는 그녀가 너무나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