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도시 –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황금가지 |
헤인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편입니다.
이번 편에는 특이하게도 주인공이 백지 상태로 시작합니다. 마음이 파괴된 자 – 어딘가에서 흘러오긴 했지만 과거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주인공 팔크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겨우 적응한 마을도, 사랑하는 여인도 남겨놓고 떠나는 길.. 하지만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왜일까요?
이 별은 ‘싱’이라는 존재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악하게도, 어찌보면 선하게도 보이는 존재들. 팔크는 먼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친절함도, 사람들의 사악함도 맛보며, 과연 사람이 인정받을 만한 존재인지, 과연 싱이 사악한 존재인지를 갈등하면서 되뇌이게 됩니다. 그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오직 경전 한 권과 동행인이 된 한 여인 뿐.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요.
르 귄의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현자’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어스시 시리즈처럼 현자 자신이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주인공에게 길을 안내하고, 조언을 주며,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인물들. 그 말을 의심하기도 하고, 때로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실수를 하고 난 후 그 말이 옳았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어찌보면 의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잘못된 길을 간 후 그 길이 틀렸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더욱 중요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팔크를 보면서, 후회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통해 내가 갈 길을 찾고, 그 길이 옳다고 생각될 때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의지를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을 두고 가더라도, 그 가치를 마음에 품고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러기에 르 귄의 소설이 항상 따스하게 느껴지는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