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동아엠앤비 |
나사(NASA)에서 숨은 역할을 한 흑인 여성들의 활약을 그린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미국의 현대사에서 흑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위치를 얻게 되었는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네요. 뜻밖의 소득인 것 같아 매우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된 남부 버지니아라면 더 그랬겠지요. 흑인들은 그런 사회에서 분리된 버스 좌석, 분리된 화장실, 입장이 금지된 식당 등을 그렇겠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자신들이 살아가기에 편리한 마을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동네의 학교를 어떻게 더 좋게 만들지, 그리고 충분한 수입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직업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해 갑니다. 그 가운데 학계에서 특출난 성과를 이룬 흑인도 등장하고, 이들이 교수로 임용되는 등 조금씩 생활 향상이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흑인 사회 내에서의 변화였네요.
의외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2차대전 중 전투기와 함정의 생산 수요, 더 나은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 이를 위한 실험 장비와 연구기관의 구축, 그리고 전문 수학자들로 이루어진 계산 특화 조직(컴퓨터) 등을 운영하기 위해 흑인 백인 여성 가릴것 없이 필요한 인재를 끌어다 쓰는 문화가 햄프턴의 NACA(NASA의 전신) 조직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갑니다. 식당도, 조직도, 승진도 점차적으로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그 가운데 좀더 진보적인 노력을 하고 더 뛰어난 성과를 거두는 흑인들, 여성들도 등장하죠. 그들이 바로 캐서린 고블, 도로시 본, 메리 잭슨 등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이후 주요 전쟁의 무대가 항공에서 미-소 냉전시대의 우주로 옮겨가면서, 유인 우주선의 발사와 달 탐사까지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그 가운데 우주선의 발사와 각종 사고 가능성의 검토, 대응안 수립, 달에 착륙 후 사령선과 재합류 시 도킹 등 수많은 가능성을 검토하는 역할을 예전 컴퓨터들-흑인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보고서를 써내죠. 암스트롱과 올드린 등 달에 첫발을 내디딘 백인들 뒤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동안은 그들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네요.
현재 소수자 인권과 유리천장, 난민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이슈화되는 우리 사회를 볼 때, 단시일 내에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지는 않겠지만, 좀더 나은 방향을 향해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우리들이 속한 조직들 내에서 좀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여가려는 나와 각자의 노력이 합쳐져야 하겠죠. 멋진 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