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감독의 영화를 보는건 정말 오랜만. 1994년 어느날 중경삼림(重慶森林)을 보고서 반해버린 이래 10년만에 만나본 그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변해 있으면서도 옛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리운 모습이었다.
사실 중경삼림 이래로 열심히 그의 영화를 찾아봤다. 열혈남아(旺角卞門, 1988),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 동사서독(東邪西毒, 1994), 그리고 화양연화(花樣年華).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중경삼림과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듯한, 쓸쓸한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중경삼림의 심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에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만나게 된 2046. 화양연화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면서 옛 기억을 잊지 못해 현재를 버려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2046이란 소설의 스토리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중요한건 그 이야기보다 그 가운데의 심상. 허무함. 그리고 애잔함. 여전한 애잔함.
중경삼림이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멈춰있는 ‘나’에 대한 영상이었다면, 화양연화는 머리속에 박혀버려서 계속 리플레이되는 그 순간에 대한 영상. 2046은 두 영화의 합성 – 의식은 과거에 못박혀있는 ‘내’가흘러가는 현재를 바라보는 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46이 좋았다. 하지만 내 입맛대로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란 생각. 각자의 마음 속에 동기(Sync)가 맞는다면 그만큼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수준작이되, 맞지 않는다면 단순한 영상의 유치한 잔치에 머무를 수도 있는 졸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작품은 예전의 중경삼림 때문에라도 허투루 넘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흘러가고 나면 잊혀질 그런 작품일지도..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가을이다.
2046 (1) – 양조위, 허무의 시인 미래에 살다.
2046 (2) – 여인들
2046 (3) – 미래의 아시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