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
2차대전때 독일 뮌헨 근교 한 동네 한 소녀의 이야기. 당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나치가 나오고 유대인이 나오고 전쟁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이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은 ‘책’이라는 하나의 소재이지요.
인디애나존스3를 보았다면 알겠지만, 나치 때의 유명한 사건이 온갖 종류의 책을 불사른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그렇지만, 독재자들은 정말 책이라는 물건을 지독히도 싫어했나봅니다. 오직 자신의 생각만 받아들이고 강요하고 싶은 그들의 입장에서야 다양한 의견을 퍼뜨리고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이런 ‘책’이란 물건은 눈의 가시였겠죠.
이 책의 주인공 리젤은 정말 ‘책’이란 물건과는 거리가 먼 고아 소녀였지만 친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손에 넣게 된 한 권의 책으로부터 인연을 맺어가기 시작합니다. 체 게바라처럼 무슨 혁명을 일으키거나, 상록수처럼 계몽을 추구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었죠. 글자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쫓기는 사람의 심정을 공감하고, 공포를 잊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자기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도록 해준 물건이 리젤의 책이었어요.
비록 슬픈 일도 있었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리젤은 친엄마와 동생의 죽음도, 양부모의 죽음도, 전쟁의 아픔도 책을 통해 얻어진 이런 여러가지 경험과 인연을 통해 살아나갑니다. 책은 기회이자 시발점인 동시에 기록이자 마무리인 셈이죠.
리젤이 읽었던 한권 한권에 얽힌 전쟁 속의 아픈 이야기가 읽기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모든 인연을 하나로 묶어 마무리하는 마지막 단락에 와서는 그 마지막 단락 덕에 모든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녹아드는 장면 하나로 읽을만하다고 생각되네요.
나는 말을 미워했고
나는 말을 사랑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말을 올바르게 만들었기를 바란다.
바깥에서 세상은 휘파람을 불었다.
비가 더럽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