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지음/허블 |
간만에 읽은 SF 단편집입니다. 김초엽 작가님을 추천하는 이야기는 익히 많이 들었는데, 역시 명불허전, 감성과 이성을 모두 건드리는, 그러면서도 규모있고 잘 짜여진 스토리를 놓치지 않는 좋은 작품을 모아주셨어요.
유전자 개조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동시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연결하는 끈을 놓치 않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난파한 주인공이 기록을 통해 감정을 계승하는 외계인과 감응하는 이야기를 다룬 ‘스펙트럼’, 누구나 잃어버리는 어린 시절 기억과 외계의 존재를 결합시킨 ‘공생 가설’, 그리고 표제작이면서 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이라는 미명 하에 가족을 만나는 길이 꼬여버린 한 과학자의 기다림을 다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이라는 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 될 때 여러 감정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혹은 심상을 다룬 ‘감정의 물성’,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이면서 죽은 사람을 조문하는 기술로서의 뇌 스캐닝을 다룬 ‘관내분실’, 언론과 대중이 기대하는 모습과 개인의 극복이란 것을 당사자의 마음과 비교하여 묘사한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제목만 들어도 바로 스토리가 떠오르는 단편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보석같은 SF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공생 가설이었어요. 외계의 존재이면서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사회성 형성이라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하는 컨셉이 정말 매력적이었네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써 주시고 언젠가 더 멋진 장편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