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 이한 지음/위즈덤하우스 |
나름 유쾌하게 읽은 조선시대~일제강점기까지의 우리 역사 기록에서 찾은 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가장 비싼 땅은 어디였는지, 양반들은 다들 잘 살았는지, 조선시대의 부자는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옛날의 투자/투기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등등 교과서에서 배운 국사에는 적혀있지 않은 생활상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건 서울에서 제일 좋은 동네 – 경복궁 서쪽의 인왕산 자락이 가장 비싸고 좋아서 태종, 안평대군, 안동김씨 등이 줄을 이어 살았다고 하네요. 양반들과 벼슬아치들도 서울 도성 내에는 집을 얻기 힘들어 세들어 살았다고도 하고, 종로3가 근처의 명보/대한극장 자리가 이순신과 유성룡, 허균/허난설헌 등이 어릴적 살던 마른내라는 이야기도 처음 알았고요 (더불어 원균도..). 양반들도 글이나 쓰고 책이나 보면서만 살았던게 아니라 퇴계 이 황 같은 분도 경상도 각지에 있는 땅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무엇을 심을지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등을 매일마다 체크하며 소득을 늘리기 위해 고민했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더불어, 농업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이앙법이 조선시대에는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금지되었다는 점은 충격이었네요.
더불어 이앙법을 위해 필수적인 저수지 – 보가 착취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동학운동의 불씨를 당긴 만석보 사건이 조병갑이 농민을 동원해 보를 쌓고 이앙법을 강요하면서 늘어난 쌀을 수탈했기 때문에 이를 읍소하러 간 농민 대표가 있었는데 오히려 맞아죽었다는 사실, 그 아들이 전봉준이었다는 것이 이제야 전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삼을 중심으로 한 역관들의 무역 이야기에서 기억에 남는건, 익히 알고있던 임상옥의 이야기보다는 좀더 이전 시대였던 장현이라는 인물 이야기였습니다. 능력과 용모, 인맥까지 타고나 한 재산을 일궜고, 아들은 무과, 딸은 상궁으로 들여보내 중요한 정보를 수집했으나 조카인 장옥정(!)의 인현왕후 저주 사건으로 집안이 풍비박산났다는 이야기. 장옥정이 가난한 집이 아니라 한재산 한정보 하는 역관 집안의 여식이었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왔습니다.
광업 쪽도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에 은광이 있다는 사실이 명에 알려져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알았는데, 조선말-일제강점기에 걸쳐 금광 발굴이 유행처럼 번졌고 실제 금을 파내기보다는 금광 자체를 거래해서 큰 부를 일군 사람들이 있다는게 신선했어요. 그 모든 것이 일본의 금본위제 이행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왔네요.
여기에 이어지는 쌀에 연관된 선물 투자, 주식 투자, 굶어서 내몰린 간도/만주 이전 정책 등이 모두 주먹구구로 관리되고 서민들이 말려든 역사는 참 한심하기도 하고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발전하기란 참 어렵구나 싶었습니다. 이를 보완하는게 결국은 제도적 감시와 시스템 구축일텐데, 이 모든걸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는 세력도 항상 있고 말이죠. 술술 읽히면서도 다시한번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재밌으면서도 볼만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