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욕심이 생겼어

살짝 욕심이 생겼어4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김영사

있으려나 서점으로 유명한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일상에서의 아이디어와 생각들, 그리고 스케치를 엮은 수필같은 이야기입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생각이 깊지 않고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장면을 캐치한 그림, 그리고 그에 관련된 작가의 생각을 가볍게 읽을 수 있었어요. 다만 그 생각이 찰나적이기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살짝 스쳐지나가고 마는게 단점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생각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게 내가 아닐 뿐. 그렇더라도, 슬슬 넘기며 순간순간 피식 웃으며 볼 수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패션사

벌거벗은 패션사4점
프레데리크 고다르.조에 투롱 지음, 이진희 옮김/그림씨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집어든 책입니다. 만화 스타일로 패션의 지향점의 변화와 현재의 과제를 짚어주는 책이라고 생각되어서였는데, 솔직히 기대에는 못 미쳤네요. 마리 앙트와네트의 궁중 시녀 (혹은 의상 코디네이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왜 거기서 시작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없고, 그 이후로도 중요한 패션 디자이너보다는 오트 쿠튀르의 변화, 스타일의 정의, 현대 패션의 지향점 및 과제 등에 관한 이야기가 뜬금없이 휙휙 지나갑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근현대 디자이너의 이야기나 지향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거나, ‘남들과 달라보이는 것을’ 지속적으로 찾는 일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할 뿐이네요. 책을 보고 나서 무언가를 얻었다기보다는 뭔가 휙휙 겉핥기로 지나가버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건 처음인듯.나중에 제대로 된 패션사를 한번 천천히 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네요.

상어가 빛날 때

상어가 빛날 때 (블랙 에디션)8점
율리아 슈네처 지음, 오공훈 옮김/푸른숲

해양생물학자가 자신의 연구분야를 가장 중점적인 테마들을 중심으로 소개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딱한 학술서적이 아니라, 의외로 형광물질이나 바이러스, 진화 등 굳이 해양생물학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친근한 주제도 있고, 공해나 미세플라스틱 등 환경적인 이슈, 그리고 돌고래의 소통이나 상어의 피부에 대한 이야기 등 미처 몰랐던 사실들도 많이 담겨 있어요. 생각보다 해양생물학이 연구할 게 많기도 하고, 심지어 바다에 대해서는 우리가 화성에 대해서보다 아는게 적다는 사실도 놀라왔네요. 화성의 지형은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으면 바로 알 수 있지만, 바다는 물을 투과해야 하기 때문에 위성으로 찍더라도 5km x 5km 정도의 해상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침몰한 배를 찾거나 실종자를 찾는것은 너무 어렵고, 해양생물을 추적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것도 의외였어요.

단백질에 표지를 남김으로써 형광물질로 그 자취를 추적하는 기술이 산호나 연체동물 등의 형광물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았고, 돌고래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으면서 어떤 기관을 이용해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등도 세세하게 설명이 들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점도 많았구요. 도서관에서 열심히 빌려 급하게 봤는데, 밀리의 서재에도 있는걸 나중에 알게 되어 필요할때 천천히 관심있는 부분을 다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학문 분야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오랜만이네요. 재밌었어요.

몰락 공작가의 마법천재

[세트] 몰락 공작가의 마법천재 (총7권/완결)8점
글술술/문피아

키르난님이 추천해준 웹소설 중 관심가는 설정이라 저장해놓고 있다가, 이번 리디 십오야에 환타지 할인 대여로 떠서 주르르 완독했습니다. 작가님 필명답게 글이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설정과 이야기 전개였습니다만, 마지막이 너무 스르륵 지나가는게 좀 아쉬웠네요. 클라이막스다운 화끈한 전개로 터뜨렸으면 좋았겠습니다만, 악역이 너무 약했어 -_-;;;

주인공은 제국의 개국공신인 공작 집안이었지만 대대로 지능이 떨어지는 자손이 태어나면서 점차 중앙에서 밀려나 빌빌거리는 마이온 가문의 (그나마 똑똑하다고 하는) 후계자 아덴입니다. 남들은 훨씬 어린 나이에 4서클 이상으로 발전해나가는 마법 실력을 한참 나이들었는데 겨우 2서클에 머무르고 있는 둔재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아덴을 거두어 챙겨주는 스승은 젊은 나이에 이미 8서클을 달성한 천재재중의 천재이죠. 이 스승이 착하기만 한 아덴을 살펴보다 이것이 머리가 나쁜게 아닌 가문에 담긴 저주 때문임을 알고 자신의 힘을 다해 저주를 풀고자 고대의 마법진을 이용하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아덴은 마법의 역류 속에서 어릴 적 과거로 회귀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문의 구성원 중 아버지, 여동생들을 제외한 아덴만 저주가 풀리고, 아덴은 안되는 머리로 박박 외웠던 지식을 되살려 급격한 성장을 합니다. 이번 생에는 스승의 부상을 막고 가문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필사적으로 공부해 아카데미도, 마탑도 휩쓸며 가문을 일으키지요. 그 가운데 제국의 4대 가문 (검성, 마법기사, 마법사, 현자) 와의 인연도 만들어가면서 나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황태자의 신뢰도 받게 되면서 말이죠. 하지만 마법사의 숙적인 어둠의 힘을 쓰는 주술사의 세력, 자신의 가문에 저주를 걸어놓은 누군가, 그리고 제국의 역사를 만들어놓았던 전설 속의 영웅의 이야기가 엮이면서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단순한 주인공의 성장기 + 먼치킨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설정이 뛰어나고 글도 유치하지 않게 유려하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게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환타지였어요. 뭔가 재미난거 찾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으로 스르륵 읽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었네요 🙂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 IMDb

간만의 영화. 사실 그동안 계속 띄엄띄엄 보고 있었는데 진도가 잘 안나가더라구요. 역시 영화는 한자리에 앉아서 정주행해야 보게 되는듯. 중간에 멈추니 다른 영화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길막하는 느낌이었네요. 어쨌든, 재미없어서 그런건 절!대! 아니고, 영화가 계속 생각하면서 이 장면이 어떤 의미지 되뇌이면서 봐야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전작의 데커드가 아니에요. 새로 등장한 경찰국의 레플리칸트 K(라이언 고슬링)가 주인공인데, 이 남자는 상당히 유능한 경찰이면서 자신의 파트너로 인간이나 레플리칸트보다는 상업용 애인 AI인 조이(아나 데 아르마스)를 더 아낍니다. Her의 사만다와 비슷하면서도 홀로그램으로 자신을 투영할 줄 아는 AI라 상당히 매력적. 더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K를 위해 계속 여러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 푹 빠지게 만드는 느낌입니다.

K는 조사 중 어떤 여인의 유골과 아이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알려진 레플리칸트였다는 점. K가 소속된 경찰국과 레플리칸트를 제조하는 월레스 사에서는 동시에 이 아이의 자취를 추적하죠. 그 사이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자신의 것인지 심어진 것인지 혼란스러워진 K는 레플리칸트의 기억을 만드는 전문가 아나 스탤린 박사를 찾아갑니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기억이 진짜라고 들은 K는 아버지라고 추정되는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찾아가 만나지만, 자신을 추적하던 월레스 사의 요원 레플리칸트 러브에게 얻어맞고 기절하죠. 그 과정에서 불쌍하게도 AI 조이는 파괴되고 맙니다.

K가 깨어나 마주친건 자신과 같은 레플리칸트 해방운동 멤버들. 그들은 아이가 레플리칸트들의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며 데커드를 제거해 아이의 안전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케이가 아니라 여자아이라고 이야기하죠. K는 충격을 받지만, 길거리에서 마주친 조이와 같은 AI의 광고를 마주하면서 AI가 어떤 의미인지, 레플리칸트의 자아는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고 데커드를 구하러 갑니다. 그리고 그를 딸이라고 추정되는 닥터 스탤린에게 데려다주며 영화는 마무리되죠. 데커드에게는 자신의 기억의 상징이었던 자그마한 말 조각상을 전해주며 말이죠.

전작과 같이 계속 의미를 생각하며 봐야하는데다가 반전도 있기에 생각하며 영화읽는 즐거움을 오랫만에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AI 조이도 상당히 매력적이라 보는 즐거움도 있었구요. 케이는 불쌍하지만 데커드는 그 나이에도 생존해서 삶을 이어나간다는게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네요.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