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
간만의 이영도 씨의 신작. 오버 더 호라이즌이 2004년이니까 4년만에 신작이 나온거네요. 그동안 독서계도 상당히 변했고, 나도 또한 취향이 많이 달라진듯 합니다. 어릴적 재미있었던 책들이 이젠 별로일 때도 있고, 반대로 어릴적 즐겁게 읽은 책이 완역되어 나오면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잡게도 되는군요.
그런 면에서 그림자 자국이란 작품은 흥미로왔습니다. 이영도씨가 명성을 얻게 된 그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환타지로 처음 접한 작품이기도 하단 말이죠. 그것도 1997년이니 벌써 10년이 넘은 시점이지만 아직도 스토리는 머릿속에서 생생하답니다. 덕분에 그림자 자국이란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이야기가 중첩되어 참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 자체로는 그림자 자국은 조금 애매합니다. 홀로 서기에는 많은 부분을 전작인 드래곤 라자에 기대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 시절 이후로 엄청난 시간이 흐른 상태이고, 무엇보다 단편이란 분량 덕분에 꼭 전작을 알지 않더라도 스토리를 따라가는건 무난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전작을 알면 더 이해의 폭이 넓어질거라는 점은 확실하지요.
예언을 하지 않는 예언자, 왕을 사랑하기에 예언자를 사랑하는 왕비, 모든 일에 관여하지만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는 왕지네, 그리고 시에프리너, 프로타이스, 아일페사스. 그리고 이루릴. 이영도의 인물들은 꼿꼿하고 강력하면서도 그 약한 면 때문에 무너지고 절망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서로가 서로 안의 약점을 보듬어주면서 희망을 살려나가죠. 덕분에 예언자는 왕비를 사랑할 수 있었고, 왕비는 왕을 사랑할 수 있었어요. 시에프리너는 프로타이스를 무시했지만 프로타이스는 시에프리너를 구원하고 자신도 구해질 수 있었구요. 그리고 인간과 드래곤은 라자를 얻었습니다.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 어느 면으로 보면 상대적인 개념이 강자와 약자를 바꾸기도 하고, 매섭과 날선 존재를 따스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키워드가 되기도 하지요. 인간과 드래곤이란 우화를 통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환타지 작가로서의 이영도씨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단편이지만 상당한 분량을 담고 있는 그림자 자국, 역시나 이영도씨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장편은 최소 네권은 넘어야 하니..) 앞으로 새로운 장편을 기대하며, 또한 드래곤라자 & 피마새의 후속 이야기도 기대해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