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3 –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문학동네 |
자, 지난 1~2권에 이어 이제 대망의(?) 사자왕 리처드의 등장, 3차 십자군입니다. 뛰어난 능력자답게 리처드는 시칠리아와 키프로스라는 지중해의 두 섬을 싹 정리해서 든든한 배후지로 만든 후 차근차근 중동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와 비견되는 지휘력과 본인이 선두에 나서는 과감성으로 아르수프 회전에서 승리하고 야파 탈환으로 항구까지 확보하여 예루살렘을 압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죠. 다만 필리프의 공작으로 본국에서 동생 존의 음모가 드러나자 재빨리 살라딘과 협상하여 예루살렘 순례에 대한 안전보장을 회복합니다. 현지를 모르는 로마 교황의 욕을 먹긴 하지만 본국이 위태로운걸요. 열심히 귀국하지만 중간에 독일에서 장난질을 한 덕분에 한참 걸려 돌아가 존을 내쫓고 다시 왕위를 회복합니다.
이후 엉뚱하게 비잔틴의 내란과 베네치아의 이권에 휘말려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게 된 4차 십자군, 본국을 공략하고자 이집트로 쳐들어간 5차 십자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6차 십자군에 이르러 강성 교황에게 등 떠밀린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정말 현지를 모르는 교황이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라 아랍권에 정통한 실무형 황제를 두 번에 걸친 파문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참 답답하더군요. 프리드리히는 현지에 도착해 전투를 하기보다는 협상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위업을 달성합니다만, 교황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제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시작된 7차 십자군.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신앙심의 발로에서 군을 이끌고 이집트로 원정합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5차와 비슷한 모양새로 상륙에는 성공했으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수많은 군사와 함께 루이까지 포로가 되고 템플 기사단에서 상당한 배상금을 지원해서 겨우 풀려납니다. 루이 9세는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시 준비하여 8차 십자군을 준비하여 튀니지로 쳐들어갔으나 이곳에서 병사 -_- 비참한 결과였으나 교황은 그를 성왕으로 추존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변해서 이슬람은 살라딘의 후예가 아닌 군부 출신의 맘루크 왕조에서 종교+군권이 강화되면서 예루살렘 탈환에 대한 여론이 커지고, 1291년 항구도시 아코가 함락되면서 중동은 이슬람의 땅이 됩니다. 이곳에 살던 그리스도교도들은 대다수가 키프로스로 후퇴하고 요한 기사단은 로도스로, 템플 기사단은 대부분 옥쇄하거나 프랑스로 돌아가죠. 다만 끝이 안좋은게 당시 프랑스 왕인 필리프 4세가 7차 십자군 당시 빚진 성왕 루이의 배상금, 그리고 템플 기사단이 소유한 재산을 탐내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고 기사단을 해체했더군요. 그래서 온갖 모험담에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같은 스토리가 종종 등장하는듯. 당시가 교황이 아비뇽으로 피난가는 등 프랑스의 왕권이 강해진 시기였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네요.
새롭게,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십자군 200년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독서였습니다. 사자왕 리처드의 행적, 카노사의 굴욕에서 아비뇽 유수에 이르는 교황권의 상승과 쇠퇴, 예루살렘 왕국의 건국과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맘루크 왕조의 교체, 그리고 몽골의 압박과 베네치아의 대두로 이어지는 시기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머릿속이 깔끔해진 느낌이에요. 덕분에 뒷 이야기 –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 를 다시 읽게 된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너무 좋은 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