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만이 하는 것 The Ride of a Lifetime – 로버트 아이거 지음, 안진환 옮김/쌤앤파커스 |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그냥 성공한 사람이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겠거니 했는데, 그보다는 디즈니 CEO가 재직중 겪었던 큼직큼직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경험담을 옆에서 듣는 느낌이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네요. ABC 시절 ESPN의 캘거리 올림픽 중계, 데이비드 린치의 트윈픽스 론칭, 디즈니의 ABC 인수, 마이클 아이스너와의 인연, 스티브잡스의 픽사 인수, 마블과 스타워즈의 연이은 인수과정과 디즈니 플러스 론칭, 그리고 폭스 인수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이게 정말 한사람이 겪은 일인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였네요.
중간중간 보이는 흥미로운 컨텐츠 언급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드라마 트윈픽스도 그렇지만, 퀴즈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라든지 요즘도 심심찮게 시간때우기용으로 방영되는 America’s Funniest Home Video, 그리고 드라마 천재소년 두기, 원맨쇼 로잔느 등등이 언급되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읽다보면 NBC와 CBS 사이에서 나름의 위치를 점유해 온 ABC와 그보다 큰 레벨에서 발전을 끌고나가는 디즈니가 결합한건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는게 실감납니다.
그렇게 큰 뉴스로 다루어지는 미국에서의 인수합병이 정말 사소한 아이디어와 전화통화로 시작된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웠고, 그만큼 사람과 사람을 통한 인간관계가 이런 CEO 레벨에서는 굉장히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느꼈네요.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틀만에 읽을 정도로 즐거웠지만, 굳이 여기에다가 핵심주제나 리더십에 관한 교훈을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은건 사족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잘 풀어놓은 스토리만 있어도 독자들이 알아서 느꼈을텐데 이를 굳이 정리해야 했나 싶었네요. (뭐, 자기계발 강연자들은 좋아라 했겠지만서도..)
덧1,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은 경험과 기억이 이어져 더 흥미롭고 재밌었네요.
덧2, 디즈니에서도 마이클 아이스너 시절 전략기획실 같은 곳이 전체 그룹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간섭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지금 회사에서도 지주사에서 별별 일을 꼬치꼬치 참견하는 기억이 나서 갑자기 디즈니가 확 부러워졌습니다. 세계적 기업에서 의사결정 속도나 사기 면에서 해체해버린 조직을 굳이 위에 두고 운영하는 회사는 혁신보다는 지금 안주하는 형태가 더 편안한거겠죠. 그분들은 이런 책을 보더라도 자기들 이야기인지 모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