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체파리의 비법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아작 |
그간 다양한 SF를 읽으면서 이름만 들어본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네요. 깔끔하고 얼핏 유머러스해보이는 표지와는 다르게 독자를 한방 먹이는 충격 혹은 섬뜩함도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쏙쏙 들어차 있습니다. 예전부터 대략적인 스토리를 들어온 체체파리의 비법과 접속된 소녀,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의 세 편은 역시나 명불허전, 70년대 쓰여진 이야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 시점에 봐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설정이 인상적이에요. 특히나 접속된 소녀는 요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아이돌 멤버들을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서 더 그렇더군요.
그리고 인류의 종말을 다룬 아인 박사의 마지막 여행, 덧없는 존재감, 비애곡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보통 이런 설정에서 다루는 디스토피아적인 멸망이라던지 존재의 완성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 부정할 수는 없는데 서글픈, 인류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이 허무해지는 그런 종말이라 묘한 느낌인듯. 특히나 덧없는 존재감의 경우 이성이라 생각한 것들이 다 본능에 따른 것으로 수렴되어버리는게 더 그랬네요. 개인적으로는 비애곡이 이 책에서 가장 좋았어요. 모든 사람이 떠나고 가장 본능적인,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던 소년 소녀의 이야기, 그리고 지구 마지막의 그 평화스러운(?) 모습, 그리고 염소 한마리 때문에 엉겁결에 지구상의 존재이기를 그만두게 되는 역설이 마음에 들었어요.
아직 절반만 선보인 터라 나머지 편으로 구성될 다음 책이 궁금해집니다. 아직 코니 윌리스 단편집 후편인 여왕마저도 역시 읽지 않고 대기중인 터라 밀린 책들 읽으면서 천천히 기다려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