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4년 8월월

은닉

은닉6점
배명훈 지음/북하우스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다가 휴식기를 가지던 주인공의 시점에서, 주인공이 어릴적부터 좋아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인 김은경이 미끼가 되어 핵으로 추정되는 전략무기를 가져가고자 하는 미상의 조직들 간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묘사한 SF입니다. 그 가운데 각종 정보를 천재적인 네트워크 정보조직을 통해 분석하고 가이드해주는 죽었다고 추정되던 친구 조은수가 등장하고, 조은수의 덕분에 네트워크에서 주인공의 취향과 성격을 통합 분석해서 카게무사같은 자취로 여러 곳에 흩뿌리는 디코이의 능력으로 추적을 피해가는 주인공의 행보를 따라가지요. 그 가운데 등장하는 전략무기는 거대한 전략 핵무기라기보다는 반대로 너무나 조그마해 보이지 않는 어떤 비행체이며, 이를 조종하는 컨트롤러는 눈동자에 씌워지는 렌즈같은 느낌의 생각 외의 기기들입니다. 하지만 이 컨트롤러에는 조종자의 이면의 인격을 드러내고 조절하는 생각 외의 작용도 있는데, 이게 사건 전개에 새로운 실마리가 되지요.

배명훈님의 작품인 만큼 이런 복잡하게 꼬인 설정들을 이해해가는 한편, 체코의 스산하고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느낄 수 있는 묘사를 함께 견뎌야 한다는 점을 즐길 수 있다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그만큼 접근성이나 스토리에 빠져드는데는 시간이 좀 걸리는 작품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스릴러는 취향에서 좀 벗어나는터라 잘 맞지는 않았습니다만, 작가님이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데는 동감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경험하는 재미는 확실히 있네요 🙂

졸부집 딸입니다

졸부집 딸입니다 110점
윌브라이트/동아

무법지대의 정보상/살수집단 멤버였으나 의뢰주인 귀족의 음모로 동료들이 모두 살해당하고 마지막 순간 귀족이 원하던 검은 성수가 담긴 병을 깨뜨리며 그 어둠에 잡아먹힌 여성 어새신, 깨어나보니 자살 시도를 했던 어떤 부유한 가문의 막내딸이 되어 깨어납니다. 게다가 시간도 한참 전. 알고보니 자신을 죽인 의뢰주 귀족 기디온 콘체른의 막내동생네 조카딸이네요. 다행히 기디온만 빼고 할아버지나 부모님은 모두 네이필리아란 이름의 조카딸을 아껴주는 집안입니다.

네이필리아는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면서 부모님을 지키고, 나아가 콘체른 집안을 보존하면서 자신을 자살하게 한 배신남과 기디온을 견제하기도 하며, 왕가의 권력 다툼을 이용해 점차 영향력을 넓혀갑니다. 환타지 배경이지만 오히려 중세 상업 이야기같은 느낌도 드는듯 해요. 그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끼어드는 전생의 자신을 찾다가 자신을 키워준 정보조직을 직접 거느리게 되는 에피소드도 재미있고, 네이필리아와 엮이는 남주 앙헬 대공 (심지어 북부대공)과의 티키타카도 유머러스해서 좋았습니다.

즐겁게 읽어서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찾아보았습니다만.. 무협쪽은 좀 아쉬웠네요. 너무 억지스러운 전개와 설정이 많아서 잘 읽히지 않더라구요. 확실히 판타지 쪽이 잘 맞는 분인 것 같습니다.

김유빈 음반발매기념 리사이틀 Poème

간만의 예술의전당입니다. 주말 오후, 더운 날이었지만 일찍일찍 도착해서 음반과 프로그램도 구입하고 사인회가 있다는걸 확인하면서 연주회에 입장했어요. 콘서트홀 음향은 확실히 다른 곳보다 좋았고, 프랑스 작곡가를 중심으로 한 레퍼토리도 포근하고 새롭고 좋았습니다. 일부러 그런건지 연주자님의 특징인지, 실황 연주를 듣는게 꼭 녹음된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수 하나 없이 너무나 안정적인 소리가 음반을 듣는것 같아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아깝달까. 이럴거면 음반을 듣지 왜 실황을 왔지 하는 느낌? 싫다는게 아니라 너무 정확하고 안정적이라 그런거에요. 어떻게하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지 하는 부러움. 물론 쉼없는 연습과 재능, 음악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이 되어서겠지요. 나도 연습좀 해야지.

드뷔시 목신의 오후는 편안하고 반가왔고 익숙해서 좋았고, 예전과는 달리 지루한 느낌이 아니라 나도 조금 성장했나 하는 느낌이었고요, 프랑크의 소나타는 어느새 익숙해진 선율이라 아 이게 이 곡이었구나 하면서 즐겁게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끝나고 사인회에서도 간만에 얼굴보며 인사도 하고 금색 펜으로 음반에 사인도 잘 받았네요. 확실히 평일 저녁에 피곤한 가운데 듣기보다 주말에 연주회 오는게 감상에 집중하기에는 훨씬 좋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즐거운 주말 저녁이었네요 🙂

_ P R O G R A M
Pierre Sancan : Sonatine pour Flûte et Piano
피에르 상캉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Claude Debussy : Syrinx pour Flûte seule
클로드 드뷔시 : 플루트 솔로를 위한 시링크스

Clause Debussy :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L. 86 (transcription pour Flute et Piano par Gustave Samazeuilh)
클로드 드뷔시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L. 86

Francis Poulenc : Sonate pour Flûte et Piano, FP. 164
프랑시스 풀랑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FP. 164

– INTERMISSION –

Henri Dutilleux : Sonatine pour Flûte et Piano
앙리 뒤튀유 :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네

César Franck : Sonate pour Violon et Piano en la majeur, FWV. 8(arrangée pour Flûte et Piano)
세자르 프랑크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가장조, FWV. 8(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편곡버전)

– ENCORE –

Clause Debussy “Beau Soir”

고양이 발 살인사건

고양이 발 살인사건8점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아작

제목만 보면 추리소설 같지만 실제로는 코니 윌리스의 SF 크리스마스 특집 단편선입니다. 작년에 읽은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와 함께 엮인 단편선이었는데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더라구요. 묘하게도 읽으면 좋은 시즌은 크리스마스인데 항상 그때는 다른거에 관심이 있다가 한참 더울 때인 8월에 읽다니, 아이러니하네요. 그래도 한여름 더울 때 크리스마스의 시원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보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멀티플렉스의 문제를 꼬집은 ‘절찬 상영중’과 전 미국에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가정한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 ‘절찬 상영중’은 영화매니아 주인공이 취미가 잘 맞아 만났다가 묘하게 꼬여서 헤어진 전 남친을 극장에서 다시 마주치면서 보고자 했던 영화와 관련된 극장측의 음모를 파헤치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상영작품 수가 점점 늘어나지만 실제 볼수 있을만한 시간대는 몇몇 작품이 다 가져가는 멀티플렉스의 묘한 상영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가봐요.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은 러브 액추얼리를 좀더 코믹한 스토리로 다시 쓴 이야기같은 느낌. 전 미국, 심지어 LA와 플로리다, 하와이까지도 눈이 내리는 기상이변이 일어나면서 바람피는 남자, 자기 생각만 하며 크리스마스이브에 결혼하려는 신부, 거위요리를 아들에게 맡겨놓고 안들어오는 엄마와 이모들, 남편을 여의고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간 여인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코믹한 상황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요. 코니 윌리스다우면서도 기분좋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다시 읽고 싶어질것 같은 느낌이네요.

10년 대여 작품이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제는 3년 반 정도 대여기간이 남은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랬고, 기간이 지나기 전에 하나씩 읽어봐야겠어요. 다음은 아서 C 클라크의 낙원의 샘. 차근차근 즐겁게 읽겠습니다 🙂

미국 재벌3세는 천재였다

미국 재벌3세는 천재였다9점
글라탕/아르데오

별 기대 안했다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입니다. 요즘 보면 환생 회귀는 단지 웹소설 플랫폼에 진입하는 장치로만 쓰고, 그 후로는 일반적인 환타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 역시 실제 경제계/산업계에 일어난 사실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펀드매니저의 지식이라는 설정을 사용하기 위해 환생이란 장치를 썼다는 느낌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뉴욕 월스트리트. 펀드매니저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주인공은 현생에서 못해본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70년대 뉴욕 은행장의 막내아들로 다시 환생합니다. 어느순간 은행장의 아들 맥시밀리안 팬텀으로 각성한 주인공은, 아버지의 은행이 곧 닥쳐올 석유파동과 대공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것을 기억해내고 직접 금융계에 뛰어들어 살리기로 결심하죠. 소련의 곡물파동을 예측함으로써 인정받은 맥시밀리안은 철강과 곡물, 군수와 자동차, 금융과 석유, 데탕트와 일본/중국의 대두 등을 겪으며, 아버지의 은행뿐만 아니라 뉴욕, 미국 금융과 정치까지 구해내며 역사를 바꾸어갑니다.

가장 재미있는 점은 지금까지 많이 들어본 이름이되 그 히스토리를 몰랐던 다양한 기업과 금융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님이 이 쪽에 상당한 지식을 쌓으셨는지,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경제 전쟁에 뛰어들어보는 느낌을 생생하게 받을 수 있었어요. 록펠러의 석유기업이 스탠다드 오일이었고, 이게 엑손모빌, 셰브론 같은 현재 대기업의 모태였다는 것, 미 서부의 BoA와 미 동부의 시티/체이스맨하탄이 어떻게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나, 중동과 일본, 중공의 영향은 어떤 정세를 타고 이루어진 일인가 등등을 새롭게 느껴볼수 있는 경험이었네요.

정말 강추하는 작품이에요. 대체역사라는 측면에서 몰랐던 사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면에서 말이죠. 소설적인 면이라면 마무리가 약하긴 하지만.. 그건 다른 쪽의 점수로 보강하는걸로. 다른 작품도 월스트리트가 배경이던데 한번 봐야겠네요.

오펜하이머

Tallenge - Oppenheimer - Cillian Murphy - Christopher Nolan - Hollywood  Movie Poster - Large Poster(Paper,18x24  inches, MultiColour) : Amazon.in:  Home & Kitchen

3시간에 걸친 작품이라 넷플릭스에 뜬지 한참 되었는데 겨우 완료했네요. 영화로 제작되기 전까지 오펜하이머란 인물을 몰랐는데, 2차대전의 원폭, 로스알라모스란 곳을 설립한 사람이란걸 처음 알았습니다. 과학자로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유학시절, 양자역학을 만나면서 자신의 영역을 찾고, 동료 과학자들과 교류하면서 교수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그리고 교수나 학생의 발언권을 위해 사상의 자유 및 운동을 지원하던 사람. 하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폭 프로젝트를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 연구소를 잇는 장소로서 로스알라모스를 건설, 책임자로서 캠프를 이끌어가는 사람.

일반적인 영화였다면 이런 행보를 따라갔겠으나, 이 과정과 함께 영화에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더 합니다. 종전 이후 매카시 광풍이 불던 가운데, 예전 동료의 스파이 혐의와 본인의 정치적 포지션으로 인해 보안접근권한에 대해 심사가 진행되는 사설 청문회를 통해 자신의 행보를 되돌아보는 관점. 그리고 그 청문회를 열리도록 해 오펜하이머를 음해하려 한 스트로스의 집착과 그 자신이 더 나은 정치적 위치인 장관직을 위해 청문회 대상이 되어 낙마하게 되는 과정.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놀란 감독의 솜씨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여기에 이어 전쟁을 억지하는 장치로서의 원자력, 그보다 더 강한 힘을 추구하는 세력들 사이에서의 수소폭탄에 대한 부정적 입장, 그리고 그 이후 미소 군비 경쟁으로 치닫는 과정이 핵분열을 연상시키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 등등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주연 킬리안 머피, 악역 로버트 다우니 jr. 모두 멋진 연기를 보여준건 물론 너무 좋았구요. 다만 후반의 두 청문회는 역사를 다시 찾아보지 않으면 이게 무슨 일이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은 함정인듯. 보실 분은 미리 찾아보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댐즐

영화 댐즐 정보 해석 결말 출연진, 존재이유를 찾아라(섬과 드래곤, 코르셋과 편견) Damsel, 2024 넷플릭스 : 네이버 블로그

볼만하다고 해서 가볍게 넷플릭스에서 재생한 환타지 영화입니다. 주인공 엘로디는 북부의 가난한 왕국의 공주로 왕인 아버지와 새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며 직접 칼들고 사냥해서 왕국 살림에 보태는 생활형 왕족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 가운데 바다건너 풍요한 왕국의 청혼을 받게 되어 왕국에 보탬이 되도록 그 나라 왕자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뭘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지만요.

바다건너 왕국에 가족과 함께 도착한 엘로디는 묘하게 가족을 배척하는 그쪽 왕족들(특히 여왕?!)에게 거부감이 들지만 나름 순진해보이는 왕자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결혼식을 마친 후 전통 행사를 위해 산을 오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그쪽 왕국을 멸망시키려는 용에게 왕족 여인을 바쳐야 하는 운명. 그 왕국에서는 제물을 위해 건강한 여인을 얻어 결혼시키고 제물로 바치는 짓을 계속 해온거였던거죠. 엘로디는 홀로 떨어져버린 동굴에서 용을 피해 살아남고자 온갖 위험을 피해가며 미로를 헤매게 됩니다.

제물로 바쳐진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활형 공주, 검도 잘 쓰고 머리도 잘 쓰며, 절대 순종적이지 않고 되로 준걸 말로 갚는 엘로디의 행보가 나름 시원시원합니다. 용의 불에 화상을 입고, 자신을 바친 아버지의 죽음도 눈앞에서 맞딱드리지만 그래도 살아남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진 이야기였네요. 다만 너무 뻔한 구도와 액션이 조금 아쉬운 작품 – 아무래도 넷플릭스작의 한계는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 즐겁게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