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philia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

너는 방과 후 인섬니아 146점
오지로 마코토 지음, 오경화 옮김/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간만에 보던 만화 하나가 완결되었어요. nyxity님이 추천해준 작품인데 항상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돋보이던 이야기를 추천하던 분이 갑작스레 남녀학생의 알콩달콩한 연애 이야기를 추천한지라 왜??? 란 생각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강렬한 액션이나 폭소 등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잔잔하고 풋풋한,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별에 대한 사랑, 잠못 이루는 밤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씩 하나씩 이어지는 잔잔한 연애담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스토리였네요.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 (리커버)6점
미나가와 아키라 지음, 김지영 옮김/퍼블리온

패션 브랜드인 미나 페르호넨을 창립한 미나가와 아키라의 자서전같은 에세이입니다. DDP에서 마나 페르호넨 전시회를 한다는 디자인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창립자가 쓴 책이 도서관에 있는것을 알게 되어 빌려봤어요. 어릴적 육상선수 지망이었던 소년이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여행을 유럽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알바를 하다가 만나계 된 패션 전시 준비하는 자리. 그곳의 인연으로 조금씩 자신의 손으로 만들수 있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실행해가며 10여년동안 작은 옷가게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나가는 과정을 들여다볼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네요.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 자신의 자랑같고, 어떻게 보면 성공한 꼰대 아저씨의 설교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럼에도 울림을 주는 부분은 잘 못하더라도 하나씩 자신의 손으로 하다보면 익숙해진다는 것, 그리고 좀 잘나간다고 일을 손에서 놓지 말것, 그리고 사람을 소중히 여길 것 등의 삶이 담긴 발언들인것 같네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브랜드가 아니라, 책에서 몇 번씩 강조하듯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평생 A/S도 제공하고 거래선도 함부로 늘리지 않는 것. 그리고 협력업체를 가격으로 후려치는게 아니라 좀더 나은 재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상의하고 그에 대해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협력자’로서의 자세를 갖는 것. 국내 업체와 주로 거래하는 것은 신뢰 관계와 더불어 항상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믿음을 쌓아올리고 좀더 나은 방향을 찾는 동반자라는 이유 때문이란 것 등 현재의 대기업 제조업과는 다른 마인드는 한번 짚어볼 만한 사항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언제 시간날때 DDP의 전시도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진을 보니 옷만 한가득 들어찬 공간이 대표 이미지던데 거기서 미나 페르호넨의 마인드를 느낄 수 있을지 함 봐야겠네요. 참, 처음 브랜드명을 들었을 때는 여성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나이많은 아저씨였다는게 충격이었어요. 그게 미나가와라는 성에서 따온 미나, 대표 패턴인 나비를 핀란드어로 말한게 페르호넨이라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 뜻밖이었습니다. ㅎㅎ

두 개의 이야기 :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

마나님 덕분에 간만에 한남동 전시장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 전 주말이었나 갑자기 제 폰을 가져가서 끄적끄적 뭔가를 하는데 나중에 보니 전시 예약을 한거였더라구요. 관람시간 예약을 해야하는데 급해서 해놓은거라고 하면서 아이가 외부 일정이 있어 나가니 그때 갔다 오자고.. 덕분에 즐겁게 오후 나들이를 할 수 있었네요.

근 10여년만에 가본 한남동 거리는 많이 달라져 있더군요. 예전 리움 생겼을때 가보고 거의 발길을 하지 못했는데 구찌 매장도 처음 봤습니다. 지하 전시장에 내려가니 거대한 흑백 인물 사진들이 바로 보여요. 행위예술가 김수자님과 연꽃, 그리고 손짓. 영화감독 박찬욱 님과 그의 노트. 그리고 한 층을 더 내려가니 눈에 들어오는 조성진과 연주하는 손. 안은미님의 화려한 색상과 몸짓, 그리고 백남준이 살던 뉴욕의 풍경까지. 크지는 않은 전시 규모였지만 가장 젊은 피사체인 조성진의 모습과 그의 손짓이 가장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긴 손가락과 유려한 움직임이 한 컷에 표현된 모습이 멋졌습니다. 나중에 3층에 올라가 본 영상에도 그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더라구요.

끝나고 한남동을 내려오면서 매거진B 건물에 위치한 퍼센트아라비카에도 들를 수 있었어요. 교토에서 가보고 서울에서 다시 마주치니 신기한 느낌. 카페라떼와 교토라떼 한잔씩 맛보며 간만의 여유로운 주말 저녁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웠어요.

구찌,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 개최 - 매일일보

sojinnkim on X: "점심시간에 구찌 두 개의 이야기 다녀왔고 조성진 사진 열심히 찍어옴ㅋㅋㅋ  https://t.co/PKiOhyCenj" / X

무림 속 바텐더로 살아남기

무림 속 바텐더로 살아남기 17점
조비본/라온E&M

나름 재미있게 본 웹소설입니다. 주인공은 현대에 바텐더로 나름의 경력을 쌓다가 사망해서 무협 세상에 환생한 주인공이 석가장이라는 상업+무력조직에 몸담으면서 커나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타지이려나 했는데, 나름 중국 술 문화(황주, 백주, 과실주 등)를 바탕으로 칵테일을 주조하거나 술을 블렌딩하던 경험, 그리고 현대 술 종류와 문화에 대한 지식과 함께 주점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중원 술 문화에 접목하는 과정이 독특했어요.

처음에는 술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란 점에서 거부당하지만, 처음에는 주점의 접객 문화를 바꾸고, 술의 소비 상황을 바탕으로 공급 체계를 정비하고, 술도가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새로운 술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서야 기회가 될 때 술을 섞어 보다 맛있고 다양하게 술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는 과정이 독특했습니다.쉐이커와 믹싱 스푼 등 바텐더용 도구들을 활용하여 술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묘사가 들어가는건 물론이구요.

그래서 무협적인 요소보다는 술이 주인공인 이야기라 칵테일과 술문화에 대한 신선한 접근으로 본다면 꽤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재밌게 봤어요 🙂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10점
이다 지음/미술문화

얼마 전에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를 재미있게 보고 최근 내셨다는 러시아 여행기를 도서관에서 빌려봤습니다. 최신작이어서인지 예약이 많이 밀려 있더라구요. 처음에 책을 예약해서 찾으러 갔을 때 책등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제본이라 왜그런가 했는데 책을 펼쳐보면서, 아 이래서 그랬구나 싶었어요. 책 자체가 이다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그린 그림과 손글씨, 그리고 곳곳의 다양한 티켓과 포장지 등을 인쇄해서 전면으로 볼 수 있게 배려한 편집이었습니다. 덕분에 보다 생생하게 현지의 느낌을 얻을 수 있었네요.

이다 님 지인인 모호연, 비로소님과 계획한 블라디보스톡 여행이 날짜가 다가오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경험으로 확장되고 여행지가 볼고그라드,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그까지 연장되는 여정. 처음 블라디보스톡 여행은 잔잔하게 저렴한 물가와 맛있는 식사, 친절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로 편안한 여행기로 시작했으나 열차를 타기 시작하면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여행지가 아닌 기차칸이 되는 특이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중간중간 들리는 곳은 단지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한 기착지일 뿐, 물론 이국적인 정서와 독특한 북국의 풍광이 있기는 했으나 매번 바뀌는 앞자리 혹은 옆자리 사람들과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침대칸의 경험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마치 여행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여행기였습니다.

정말 직접 열차를 타고 경험하기는 좀 저어되지만, 확실히 비행기 타고 그곳을 후루룩 보고 오는 그런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현지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정말 그곳 사람들은 기차를 이런 느낌으로 타는구나 하는걸 실감하는 이야기. 더불어 현지 사람들과 식사, 그리고 현장에서 느끼는 건물과 자연, 그리고 미술관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이야기가 어우러져 정말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정말 좋았습니다.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