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 바텐더로 살아남기

무림 속 바텐더로 살아남기 17점
조비본/라온E&M

나름 재미있게 본 웹소설입니다. 주인공은 현대에 바텐더로 나름의 경력을 쌓다가 사망해서 무협 세상에 환생한 주인공이 석가장이라는 상업+무력조직에 몸담으면서 커나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환타지이려나 했는데, 나름 중국 술 문화(황주, 백주, 과실주 등)를 바탕으로 칵테일을 주조하거나 술을 블렌딩하던 경험, 그리고 현대 술 종류와 문화에 대한 지식과 함께 주점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중원 술 문화에 접목하는 과정이 독특했어요.

처음에는 술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란 점에서 거부당하지만, 처음에는 주점의 접객 문화를 바꾸고, 술의 소비 상황을 바탕으로 공급 체계를 정비하고, 술도가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새로운 술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서야 기회가 될 때 술을 섞어 보다 맛있고 다양하게 술을 즐기는 방법을 제시하는 과정이 독특했습니다.쉐이커와 믹싱 스푼 등 바텐더용 도구들을 활용하여 술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묘사가 들어가는건 물론이구요.

그래서 무협적인 요소보다는 술이 주인공인 이야기라 칵테일과 술문화에 대한 신선한 접근으로 본다면 꽤나 재미있는 소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재밌게 봤어요 🙂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내 손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10점
이다 지음/미술문화

얼마 전에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를 재미있게 보고 최근 내셨다는 러시아 여행기를 도서관에서 빌려봤습니다. 최신작이어서인지 예약이 많이 밀려 있더라구요. 처음에 책을 예약해서 찾으러 갔을 때 책등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제본이라 왜그런가 했는데 책을 펼쳐보면서, 아 이래서 그랬구나 싶었어요. 책 자체가 이다님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그린 그림과 손글씨, 그리고 곳곳의 다양한 티켓과 포장지 등을 인쇄해서 전면으로 볼 수 있게 배려한 편집이었습니다. 덕분에 보다 생생하게 현지의 느낌을 얻을 수 있었네요.

이다 님 지인인 모호연, 비로소님과 계획한 블라디보스톡 여행이 날짜가 다가오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경험으로 확장되고 여행지가 볼고그라드,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그까지 연장되는 여정. 처음 블라디보스톡 여행은 잔잔하게 저렴한 물가와 맛있는 식사, 친절하지만 무뚝뚝한 표정의 사람들로 편안한 여행기로 시작했으나 열차를 타기 시작하면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여행지가 아닌 기차칸이 되는 특이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중간중간 들리는 곳은 단지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한 기착지일 뿐, 물론 이국적인 정서와 독특한 북국의 풍광이 있기는 했으나 매번 바뀌는 앞자리 혹은 옆자리 사람들과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침대칸의 경험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마치 여행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여행기였습니다.

정말 직접 열차를 타고 경험하기는 좀 저어되지만, 확실히 비행기 타고 그곳을 후루룩 보고 오는 그런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현지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정말 그곳 사람들은 기차를 이런 느낌으로 타는구나 하는걸 실감하는 이야기. 더불어 현지 사람들과 식사, 그리고 현장에서 느끼는 건물과 자연, 그리고 미술관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이야기가 어우러져 정말 즐겁게 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정말 좋았습니다. 꼭 보시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세트]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상.하 세트 – 전2권8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민경욱 옮김/서울문화사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울 때에는 거의 존재조차 모른 인물을 시오노 나나미라는 팬심 가득한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깜놀하는 과정을 계속 겪고 있습니다. 전작인 십자군 이야기에 이어 당시 십자군을 주창한 교권의 수장 교황에게 맞서 인간의 이성적인 면에서의 법치를 주장하며 속권을 확립하고자 애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이 책의 주인공인 프리드리히 2세였네요.

작가는 항상 보면 개인으로서 시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주체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며 대외적으로 조율을 잘 하는 인물을 선호한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일반적인 호감이 아니라 팬심을 넘어 빠심까지 드는 것 같아요. 로마인 이야기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그리스인 이야기의 페리클레스, 십자군 이야기의 사자왕 리처드, 로마의 체사레 보르지아,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베네치아 통령들이 그 대상이 되었던 것 같고 이제는 신성로마제국 차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아랍과의 균형감각을 지니며 자란 소년기,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를 재패하며 북부 이탈리아의 방해를 넘어 독일령에서 숙부의 견제를 뚫고 무사히 황제로 선출되는 과정을 거친 청소년기, 그리고 북부 독일과 남부 이탈리아를 아우르며 교황의 견제를 무마하며 봉건제를 넘어선 군주제와 법치체제, 교육기관 설립 등의 개혁을 추진하는 청장년기를 따라가며 봉건 체제 하에서 르네상스를 앞서간 계몽 군주 선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덕분에 꽤 두터운 두 권이 쑥쑥 읽히는 것은 작가의 팬심 덕분이기도 하고 신선한 스토리 덕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 어렴풋하게만 보였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모습이 십자군 이야기와 함께 엮어서 좀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네요. 어떻게 보면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6점
이꽃님 지음/문학동네

죽이고 싶은 아이를 쓴  이꽃님 작가의 문학동네 수상작입니다. 조금 더 친절하고 애정있는 타임슬립 스토리를 다루고 있어요. 주인공은 엄마 없이 무관심한 아빠 슬하에서 자라고 있는 여중생 은유. 어느 날 자신의 미래에 편지를 쓰는 이벤트에서 쓴 편지가 어떤 초등학생 은유(동명이인!)에게 전달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은유가 있는 곳은 2020년대, 아이가 있는 곳은 1980년대란 것이죠. 40년간의 시간 차이를 넘어선 펜팔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중학생 은유는 독립을 꿈꿔나가고 초등학생 은유는 훨씬 더 빠른 시간이 흘러가며 나이가 역전이 되어갑니다. 둘 사이에서 흘러가며 접점을 이루는 이야기가 궁금증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중학생 은유에게서는 왜 엄마가 없는지, 왜 아빠는 그렇게 무관심하고 새로 만나게 된 새엄마 후보는 왜그리 아는척을 하는지 등등의 궁금증이. 초등학생이며 나중에 성인까지 이어지는 1980은유에게서는 이 아이가 어떻게 커나가고 어떻게 중학생 은유의 부모님을 추적하는지, 그리고 과연 현재의 은유와는 어떤 관계가 맺어질지 등이 기대되고요. 이런 의문을 배경에 깔고 진행되는 이야기는 때로는 SF처럼 때로는 추리소설처럼 이어져 재미를 주네요. 물론 SF에서 이런 설정을 많이 본 사람들은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즐겨 쓰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네요.

아이에게는 죽이고 싶은 아이보다 더 추천해주고 싶은 내용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가족간의 애정을 회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학생간의 갈등을 다룬 책보다는 좀더 마음이 편하네요.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죠 🙂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8점
이다 지음/현암사

일러스트레이터 이다 님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1년 동안 이사간 집 주위를 다니며 관찰한 자연 – 새들과 나무들, 꽃과 구름과 하늘 등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해나간 이야기입니다. 산과 가까운 집이기에 날아든 물까치 무리들과 가까이 있는 불광천에 어느날 나타난 집오리 형제 세 마리의 성장과정, 종종 나가는 산책에서 수집했던 다양한 깃털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며 달라지는 나무의 모습과 몰랐던 종을 찾아나가는 과정까지, 별 생각없이 지나쳤던 주변의 동식물을 따스한 눈길로 관찰하고 기록해나간 모습에 독자의 눈도 주변을 새롭게 보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읽으면서 꽤나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에 감탄할 수 있었고, 이런 기록을 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것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책 말미에 수채화 물감으로 표현한 다양한 자연의 색상도 정말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펴볼 수 있었고 말이죠. 사실 시리즈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죠. 동일한 작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