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감시원

화재감시원10점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아작

아작출판사의 세번째 책은 놀랍게도 코니윌리스 걸작선입니다. 우선 다섯 편이 화재감시원이란 타이틀을 달고 나왔는데, 예전 온라인에서 번역본을 읽고 있었던 리알토에서를 필두로 나일강의 죽음,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화재감시원과 내부 소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대하고는 있었습니다만, 첫 두 편을 읽었을 때는 사실 긴가민가했어요. 리알토에서는 양자역학과 현실세계의 만남을 다루고 있는만큼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고 –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곳이 맞는지 아닌지, 자기가 찾는 사람이 그곳에 있는지 아닌지를 계속 되뇌어야 하니까 말이죠 – 나일강의 죽음은 반쯤 호러스러운 상황을 다루고 있느니만큼 과연 이게 현실인지 환상특급같은 머리속 상상인지를 혼란스러워하며 읽었거든요. 나름 신선한 느낌이긴 했지만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라 할까요.

하지만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처음에는 소녀 쪽에 이입되어 상황을 보다가 마지막에 가까이 가면서는 오히려 나머지 가족들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표지작 화재감시원! 예전 읽었던 개는 말할 것도 없고, 둠즈데이북과 이어지는 세계관을 갖고 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더구나 둠즈데이 북과 더 밀접한 상황 – 사실 읽으면서는 너무 암울해서 미칠 것 같았는데, 그 상황을 겪고 나니 화재감시원은 선배의 입장(?)에서 따스한 눈길로 볼 수 있었던것 같네요.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마지막의 내부 소행이었습니다. 번역된 제목보다는 원제 –  Inside Job – 가 더 내용상 맞는 느낌이에요. 헐리우드에 가득한 영매 집단 내부라는 뜻 + 영매 내면에서 암약하는 누군가의 영 + 집단 내부의 고발 + 비과학적 사실을 추적하고 드러내는 남녀 주인공들의 내면의 갈등 등이 퍼즐처럼 조합된 제목이라서 말이죠. 과학과 비과학이 미묘하게 갈등하는 상황도 재미있고, 주인공 남녀의 행동과 심리 변화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더구나 SF면서 영매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도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심심하면 집어들고 다시 읽고 싶어질 만한 중편이에요.

순식간에 한 권을 읽고 나니 출간 예고되어 있는 여왕마저도 역시 더더욱 기대가 됩니다. 역시 코니 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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