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은교6점
박범신 지음/문학동네

간만에 일명 기존 문단의 소설을 한 편 보았습니다. 영화화된 작품이기도 하고, 예전 타임라인에서 관련 글을 본듯(?)도 해서 연말 리디북스에서 구입했다가 해를 넘겨 읽게 되었네요. 예전에 은희경씨나 김영하씨의 소설을 즐겨 보기도 했기에 나름 기대하면서 한장 한장 넘겼습니다..만.

작품을 읽으면서 인물의 설정, 관계, 그리고 문장의 멋, 아름다움, 그리고 스토리 구성 등은 역시나 문학가답다고 느끼며 보았습니다. 슬쩍 본 평처럼 아무 장이나 펼쳐 문장을 뽑아내도 시구가 될 것 같은 글이였어요. 다만 기저에 깔린 인식이 고루하다고나 할까, 은근한 불편함이 느껴져서 왜일까 싶었네요. 글은 요즘 글이되 인물과 사건이 60년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랄까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면 – 왜 여자주인공은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왜 사건의 화자는 남성 (게다가 둘) 이어야만 하는가. 너무 은교는 당하기만 하고 사건의 주체보다는 객체로서만 보여지고, 마지막의 역할도 그냥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수동적인 모습. 이런건 김동인이나 현진건의 고전에서 보이던 얼개와 다를 바 없다는 기분이에요. 그냥 시대만 2010년대로 옮겨온것 같달까요.

얼마 전 악스트 사건에서 보듯 기존 문단의 맹점은 글솜씨도, 구성도 아닌 현실 인식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스타가 아닌 기존 유명 작가분이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소설을, 영화를 더 선호하는 독자층 또한 나이가 들어버린게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 때에는 우리가 기성 세대가 되면 세상이 변할 줄 알았는데, 인구 면이나 재산 면이나 여전히 힘을 쥔 건 6,70대의 베이비붐 세대라는게 우리 사회의 맹점이 아닐까 싶네요.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학도.

그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애증, 그리고 그 사이에 은교라는 한 소녀를 둔 다툼,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 후반의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어찌보면 그중에서도 너무 진부한) 인용부만 뺀다면 한 편의 고전으로서는 볼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과 함께 구입했던건 나름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에요. 얼마 후 집어들게 되겠지만 그 때는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