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3년 10월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상세 < < 전시 < 국립현대미술관

지난 주말 아이가 캠프 간 사이에 간만에 둘이서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장욱진 님의 전시를 한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전시기간이 길긴 하지만 계속 미루면 결국 못가는 사태가 발생하길래 마음먹고 나가게 되었네요. 덕수궁은 아직 가을 초입인지라 단풍이 조금 들기 시작하는 정도였어서 내부 산책보다는 전시관으로 직행했습니다.

크게 4개의 관으로 나누어 있었는데, 1관이 초기작부터 후기까지 주르르 전시되어 있어 전시 전체를 본 느낌이더군요. 다 봤는데 3개 관이 더 있다니 뭐가 있길래. 그래서 이동해간 2관은 장욱진님이 즐겨 그린 사물들 – 해와 달, 나무, 가족 등에 대한 전시가 이어졌고, 3관은 마나님을 대상으로 시작해서 불교에 관한 전시들, 마지막은 전반적인 널찍널찍한 마무리 전시가 이어졌네요. 개인적으로는 1관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훑을 수 있었던 것과 4관의 매력적인 작품들이 독특한 아이디어로 펼쳐진 전시가 마음에 들었어요.

이렇게 많은 작품을 계속 그리다니 화가라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다 이야기가 있고 각각의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 이런 한 자리에 모인 것 또한 대단했구요. 장욱진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네요.

정직했던 화백의 60여 년 화업...'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 아주경제

스즈메의 문단속 展

티켓링크

지난 20일, 전시회 마감 하루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다녀왔습니다. 강남신세계 지하에 전시를 할만한 공간이 있었나 했는데, 의외로 공간을 알차게 사용해서 전시를 잘 해놓았더군요.

전시의 주요 내용은 스즈메의 문단속 콘티와 애니화를 위한 과정, 그리고 인물들과 공간, 사물의 디자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군데군데 스토리의 주요 소품을 제작해놓은 씬도 있어 흥미로왔어요. 귤이 막 쏟아지던 장면에서 그물로 귤을 회수하는 소타 의자의 활약, 스즈메가 스쿠터 뒷자리에 앉아 쓰게 되는 헬멧이라든가, 스즈메가 들고 이동하는 보스턴백이라든가 등등.

하지만 메인은 역시 콘티. 거의 작화 수준의 장면 묘사와 인물들의 대사가 적혀진 내용을 보면 작품의 장면장면이 새록새록 나타나고, 이를 옆의 화면에 있는 장면과 계속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그리고 애니 제작 과정도 이런 초기 작화를 컷바이컷으로 영상처럼 넘기는 1차, 흑백에 약간의 포인트를 가미해 영상의 느낌을 잡아보는 2차, 원화 기준으로 작성한 초기본, 그리고 여기에 색상과 빛, 그리고 세부 보정을 한 마무리까지 4단계로 소개되는 영상 제작 과정도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이 과정에 2년 반이 넘게 걸렸다죠.

흥미로운 전시 내용에 비해 굿즈는 좀 별로인 느낌. 사실 다이진이 가득 그려진 잠옷은 좀 귀여웠지만 싱글 사이즈였고, 패브릭 포스터도 괜찮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억지스러운 메모지나 노트 등이 어마무시한 가격으로 나와있어 발길을 돌리게 되더군요. 아쉽.

원래 아이와 함께 갈까 했는데 급격히 관심히 떨어졌는지 별로라고 해서 갈까말까 했는데 그래도 때를 놓치지 않고 잘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취향

취향8점
박상미 지음/마음산책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마음에 들어 작가의 다른 에세이를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봤습니다. 확실히 그 연장선상에 있어서인지 즐겁게 봤어요. 뉴욕에 살면서의 일상과, 작가나 화가의 인터뷰를 일로서 하는 순간의 감상,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생각과 조금 더 깊은 심상. 약간은 낯선 곳에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일상을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작가의 눈과 마음을 통해 읽어내려가는 경험이란. 게다가 그게 자신의 취향과 어느정도 상호작용하는 – 잔잔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독서가 좋았네요.

한동안 미뤄뒀던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해서 작가님의 다른 책을 또 찾아보는건 한참 뒤가 될 것 같지만, 이렇게 마음 한켠에 이 분의 책은 믿고 읽고 공감할 수 있다 싶은 작가를 모셔놓고 있는건 마음 든든한 일 같네요. 마치 내 마음의 주치의를 모신 느낌.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선물 展

더현대 ALT.1] ATO; 현대 미술 거장 6人, 아름다운 선물 展 (예약링크) : 네이버 블로그

더현대에 갔다가 무료 전시가 있는걸 알게 되어 보게 된 한국 현대미술 작품전입니다. 별 생각 없이 갔는데 의외로 괜찮은 구성이라 만족스러웠네요. 특이한 점이라면 영화배우 김희선 씨가 작가님들을 만나 섭외하여 소개하는 컨셉이라 상당히 의외였어요. 그럼에도 작가들 면면이 상당히 흥미로왔네요.

점/선의 화가 이우환 님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사실 박서보 님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화가인 터라 전시를 보자고 마음먹은 면도 있어요. 작가의 약력과 대표작 등이 글과 화면으로 제시되고, 점화 / 선화 / 그리고 컴포지션 등을 차례로 봤는데 기존 지식이 없더라도 잘 파악할 수 있는 구성이었어요. 이우환 님이 문을 여는 첫 작가였다면 박서보 님은 문을 닫는 마지막 화가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단색화가 대표적으로, 한지를 겹쳐 같은 자리를 계속 붓질해 요철을 표현하는 묘법을 창시했다고 하며, 깊이감 있는 색색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박석원 님은 조각가로 서로 다른 물성을 반복해서 패턴화하는 탑 같은 작품과, 한지를 규칙적으로 배열해서 붙여 만든 작업이 인상적이었고, 김강용 님은 벽돌화가로 모래를 캔버스에 바르고 그 위에 유화로 그림자를 표현해 작업한 색색의 벽돌 그림들이 멋졌어요.

강형구 님은 가장 특이한 케이스로, 미대를 졸업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늦깎이로 데뷰한 극사실주의 인물화가로 적색이나 흑색 바탕의 모노톤을 기조로 200호 이상의 초대형 초상화가였어요. 오드리 헵번이나 마릴린 먼로 같은 유명한 인물들과 본인의 자화상 등을 알루미늄판에 유화로 작업해서 머리카락이나 수염이 반짝거리는 듯한 표현이 멋졌습니다. 직접 나와서 본인의 작업관을 설명해주시기도 했네요. 이이남 님은 미디어 아티스트로 모니터가 때로는 병풍으로, 때로는 유리창으로 느껴지도록 하면서 고전 동양화의 대잎이나 동물, 곤충들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으로 혹은 촛불이 창 너머로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잘 표현해낸 것이 기억에 남아요.

뜻밖의 관람이었지만 꽤나 풍성한 기획이라 좋았습니다. 동네에서 백화점에 갔는데 이런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니 참 부럽기도 했네요 🙂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 | 다음영화

흥행은 실패했지만 작화와 음악이 꽤 좋았다고 소문났던 폭스 애니메이션. 어쩌다보니 기회가 닿아 이제야 봤네요.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면서 행방불명되었던 공주 아나스타샤를 찾는 황태후와, 황태후가 내건 상금을 노리고 고아 소녀를 데리고 황태후가 망명한 파리로 가는 드미트리와 블라디미르와의 여정을 다뤘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법으로 왕가를 몰락시킨 라스푸틴의 암수, 주인공 남녀가 진짜 공주임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 아나스타샤의 선택까지 스토리 자체는 꽤 볼만해요. 다만 스토리 자체가 민중의 혁명 과정을 라스푸틴의 음모로 폄하하는 느낌이 강해 역사왜곡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치명적인 면이 있을 뿐이죠 -_-;

소문난 만큼 중간중간 보이는 작화가 미친듯한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90년대라는 환경이라 당연히 한땀한땀 그린 셀화에 3D CG가 간간히 들어간 형태인데,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듯한 궁전의 무도회 씬 같은 경우는 정말 감탄했어요. 마치 쇠라의 점묘화를 보는 듯한 느낌. 덕분에 러빙 빈센트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음악도 자연스럽게 장면과 어울리는데다가 귀에 잘 들어오는 멋진 연주가 좋았구요. 나중에 보니 성우도 아나스타샤가 멕 라이언, 드미트리가 존 쿠삭이었더군요. 아 그리운 이름들이여 ^^ (게다가 아역 아나스타샤가 어릴적 커스틴 던스트라고..)

이 작품을 디즈니+에서 볼 수 있는 스토리도 재밌었습니다. 디즈니에 대항해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을 대거 채용한 폭스에서 과감하게 투자해 만든 작품이어서 디즈니스러운 그림체가 많이 남아있었다는 점 (그래서 마나님은 보면서 디즈니 신데렐라/백설공주같은 인물 움직임이라고..), 그리고 이후 폭스에서 애니메이션을 접으면서 사업부를 디즈니에 매각했고, 덕분에 디즈니가 경쟁작이었던 아나스타샤를 작품목록에 품게 되었으며, 그래서 팬들은 아나스타샤를 디즈니 프린세스에 끼워넣기도 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했어요. 그만큼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러빙 빈센트를 봐야겠어요. 아직 넷플에 있으려나 다른 플랫폼을 찾아야 하려나..

닥터 차정숙

닥터 차정숙 - 나무위키

정말 간만에 본 한국 드라마입니다. 굳이 정주행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오며가며 한편씩 보다보니 이야기 전개가 궁금해진 터에 완결도 됐겠다 넷플릭스에도 올라왔겠다 해서 연휴동안 주르르 못본 부분을 채워 보게 되었네요.

처음에 드라마의 존재를 알게 된건 댄스가수 유랑단을 보다가 멤버들이 펜션에서 1박을 하면서 엄정화씨가 이 드라마 시청률을 모니터링하며 전전긍긍하던 장면 때문. 상당히 오랜만에 드라마 주연으로 출연했기에 상당히 불안해했지만 첫 시청율이 괜찮게 나왔다고 했고 이후 종종 보면서도 재밌었터라.. 주인공 차정숙 역도 늦깎이로 주부→레지던트 생활의 어려움을 실제라기보다는 좀더 가볍게 묘사하면서도 나름 공감을 이끌어냈던 것 같고, 악역인 남편 서인호 역할을 맡은 김병철 씨가 악역이지만 너무 밉지는 않게, 찌질하면서도 나름 코믹하게 캐릭터를 그려내면서 드라마를 톡톡히 살렸다는 느낌이었네요. 특히 상상속 장면을 표현해주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ㅎㅎ

그 외에도 친정엄마와 시모 역 배우들도 열연했고, 명세빈도 악역으로 꽤 괜찮은 역할을 했으며, 중간중간 에피소드에 나오는 환자들도 임팩트있게 스토리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에요. 기억에 남는 회장님과 무기수 아주머니가 기억에 남네요. 만삭의 임산부 암환자도 생각나구요. 그 외 조연으로는 서인호의 두 딸들이 갈등을 잘 표현해줬고, 아들보다는 여친인 전소라 역(조아람)의 연기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마통으로 스포츠카 뽑은 그 패기가 잘 표현됐다는 느낌 ^^

간만의 드라마 재밌었고, 지금 보기 시작한 무빙도 그만큼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엘리멘탈

Elemental (2023) - Posters — The Movie Database (TMDB)

뒤늦게 본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입니다. 이민자와 기존 민족과의 연애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구도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지는지는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거였네요.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고 왠지 열린 마인드인 물, 가족주의 중심으로 가장 나중에 사회에 편입된 불, 스포츠를 즐기고 기분파인 공기, 무난무난하게 어울리는 땅? 풀?까지. 하지만 주역은 역시나 불과 물 커플 – 엠버와 웨이드입니다.

가업인 가게를 물려받는걸 목표로 해온 앰버와 누수 사태를 추적해온 웨이드가 우연히 만나고, 건축법 위반으로 가게가 문을 닫게 된 상황이 벌어지면서 시작된 사건은 앰버가 자신에게 새로운 재능과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가족이냐 꿈이냐를 놓고 고민하면서 갈등이 증폭됩니다. 사실 이 한 편에서 웨이드의 역할은 감싸고 보호해주는데 지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네요. 결국은 고민하는것도 앰버 결심하는것도 앰버니까.. 그럼에도 작품이 아쉽지 않은 것은 짧은 시간 동안 에피소드를 밀도있게 담아 너무 직선적인 플롯으로 읽히지 않게 잘 배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다시 말하자면 보면서는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보는 장점, 하지만 보고 나서는 어라 앰버 이야기만 하다 끝났네 하는 아쉬움이랄까.

그래서 굳이 추천 여부를 생각해본다면 생각하지말고 일단 보고 나서 재밌게 봤다 하면 되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 배경이 된 섞여사는 사회에 대한 고찰이라든지 개인적인 감상은 있어야 하겠지만, 이후로 스핀오프가 나온다든지 2부를 기대한다든지 하면 안될 것 같아요. 그냥 이 작품은 이 한편으로 만족하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