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leep

빅 슬립4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북하우스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을 읽었습니다. 얼마 전 불어닥친 홈즈와 뤼팽 전집 러시로 추리소설을 몇 권 읽기는 했습니다만, 대부분 어릴적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접해본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회상하는 형식으로 읽은거라 ‘추리’를 통한 즐거움을 느끼는 추리소설과는 차이가 있었죠. 그런 면으로 볼 때, 이 빅 슬립은 정말 간만에 생각해가면서 읽은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탐정이 예전 용맹한 군인이었던 스턴우드 장군에게 의뢰를 받습니다. 두 딸 중 어린 카멘이 협박을 받았는데 그 실체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이 필립 말로라는 탐정은 경찰, 카지노, 골동품상 등 이곳저곳을 들쑤시면서 싸우기도 하고 미행도 하면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갑니다.

주인공인 필립 말로는 상당히 독특한 탐정입니다. 아니, 독특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탐정의 모습은 말로처럼 싸움도 잘하고, 언변도 좋고, 고독하면서도 능글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배경 자체도 20세기 초반 LA의 범죄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가 현실감 넘치게 묘사되어 독특한 느낌입니다. 자꾸만 마피아와 알 카포네가 주름잡던 시카고가 연상되어서 의식적으로 ‘여긴 LA. 시카고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상기시키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필립 말로는 이런 현실적인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런 시대라면 단지 돈과 보상을 위해서만 일하는 냉혈한 모습을 보여줄거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그는 의외로 단지 의뢰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실감을 느끼기 위해 사건에 몰두하는 정의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처럼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펼쳐지는 필립 말로의 추적이 흥미진진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그런지 전형적인 영화적 스토리란 느낌도 드네요. 매력적이면서도 어딘가 상투적인 이야기. 하지만 그래서 더 봐둬야 할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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