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23년 6월월

십자군 이야기 3

십자군 이야기 310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문학동네

자, 지난 1~2권에 이어 이제 대망의(?) 사자왕 리처드의 등장, 3차 십자군입니다. 뛰어난 능력자답게 리처드는 시칠리아와 키프로스라는 지중해의 두 섬을 싹 정리해서 든든한 배후지로 만든 후 차근차근 중동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와 비견되는 지휘력과 본인이 선두에 나서는 과감성으로 아르수프 회전에서 승리하고 야파 탈환으로 항구까지 확보하여 예루살렘을 압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죠. 다만 필리프의 공작으로 본국에서 동생 존의 음모가 드러나자 재빨리 살라딘과 협상하여 예루살렘 순례에 대한 안전보장을 회복합니다. 현지를 모르는 로마 교황의 욕을 먹긴 하지만 본국이 위태로운걸요. 열심히 귀국하지만 중간에 독일에서 장난질을 한 덕분에 한참 걸려 돌아가 존을 내쫓고 다시 왕위를 회복합니다.

이후 엉뚱하게 비잔틴의 내란과 베네치아의 이권에 휘말려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게 된 4차 십자군, 본국을 공략하고자 이집트로 쳐들어간 5차 십자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6차 십자군에 이르러 강성 교황에게 등 떠밀린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정말 현지를 모르는 교황이 시칠리아에서 나고 자라 아랍권에 정통한 실무형 황제를 두 번에 걸친 파문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참 답답하더군요. 프리드리히는 현지에 도착해 전투를 하기보다는 협상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는 위업을 달성합니다만, 교황은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제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시작된 7차 십자군.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신앙심의 발로에서 군을 이끌고 이집트로 원정합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5차와 비슷한 모양새로 상륙에는 성공했으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수많은 군사와 함께 루이까지 포로가 되고 템플 기사단에서 상당한 배상금을 지원해서 겨우 풀려납니다. 루이 9세는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다시 준비하여 8차 십자군을 준비하여 튀니지로 쳐들어갔으나 이곳에서 병사 -_- 비참한 결과였으나 교황은 그를 성왕으로 추존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변해서 이슬람은 살라딘의 후예가 아닌 군부 출신의 맘루크 왕조에서 종교+군권이 강화되면서 예루살렘 탈환에 대한 여론이 커지고, 1291년 항구도시 아코가 함락되면서 중동은 이슬람의 땅이 됩니다. 이곳에 살던 그리스도교도들은 대다수가 키프로스로 후퇴하고 요한 기사단은 로도스로, 템플 기사단은 대부분 옥쇄하거나 프랑스로 돌아가죠. 다만 끝이 안좋은게 당시 프랑스 왕인 필리프 4세가 7차 십자군 당시 빚진 성왕 루이의 배상금, 그리고 템플 기사단이 소유한 재산을 탐내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 죽이고 기사단을 해체했더군요. 그래서 온갖 모험담에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같은 스토리가 종종 등장하는듯. 당시가 교황이 아비뇽으로 피난가는 등 프랑스의 왕권이 강해진 시기였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네요.

새롭게,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 십자군 200년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독서였습니다. 사자왕 리처드의 행적, 카노사의 굴욕에서 아비뇽 유수에 이르는 교황권의 상승과 쇠퇴, 예루살렘 왕국의 건국과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맘루크 왕조의 교체, 그리고 몽골의 압박과 베네치아의 대두로 이어지는 시기가 일목요연하게 그려져 머릿속이 깔끔해진 느낌이에요. 덕분에 뒷 이야기 –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 를 다시 읽게 된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너무 좋은 책이었습니다 🙂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10점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캠프간 아이 마중하러 기다리는 중 집어들었다가 손에서 놓지 못해 반나절만에 완독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어릴적 피아노를 배웠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50대에 들어 출판사 사장님의 책좀 내달라는 요청에 피아니스트 강사 섭외해서 출판사 카페에 있는 피아노로 레슨해주면 그 이야기 쓰겠다고 해서 흔쾌히(!?) 허락하는 바람에 레슨받으면서 연습하면서 느낀 이야기가 한 편의 책이 되었네요.

시작부터 유쾌하고 중간중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이들어 악기를 연주해보는 혹은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는 점이 너무 많아 공감 200%인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특히나 힘을 빼야 소리가 난다는건 정말 며칠 전에 제가 SNS에 썼던 이야기라 더한 듯. 힘을 빼고 연습하다가 힘들어 지쳐버린 사람이 하는 이야기이니 믿어도 됩니다. 저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도 정말 공감이구요.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점점 악보도 읽기 힘들어지고 연습하기도 힘들어지지만 정말 즐겁기 위한 것이니 한 줄이라도 한 마디라도 연습하고 소리낼 수 있다면 그게 좋은거라는 말이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지금 연습하고 있는 곡도 정말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곡씩 해나갈 수 있다는게 얼마나 축복인지 말예요.

덤으로 작가님이 즐겁게 듣고 있다는 피아노곡 음반 추천도 딸려 있어 좋네요. 한번씩 찾아서 들어봐야겠어요. 특히나 글렌 굴드의 음반은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더불어 꿀벌과 천둥 꼭 읽어봐야겠어요. 둘다 너무 강렬하게 언급되어 있어 마음을 움직여준 작품들이라. 이렇게 광고 아닌 책 속 추천이 정말 마음을 움직여 소비를 하게 만드는것 같네요 🙂

2023 교향악축제 – 성남시향+조성현

한화와 함께하는 2023교향악축제 < 클래식뉴스 < 기사본문 - 뉴스클래식M

챙겨주신 마나님 덕분에 2023년 교향악축제 한꼭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룻 협연이 있는 성남시향 (금난새 지휘) 으로 잘 보고 왔어요. 간만의 교향악축제인데 시작 20분 전에 클래식 칼럼을 쓰시는 김성현 기자님이 나와 당일 래퍼토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시고 더불어 협연자 인터뷰도 진행해 주시는게 신선하고 너무 좋았습니다.

래퍼토리는 평소에 듣기 힘든 선곡이었어요.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은 어떤 곡인가 했는데, 도입부는 정말 많이 들어본 과과광 하는 멜로디를 듣고서는 아 이거였구나 했네요. 나중에 앵콜곡으로 2번의 한 꼭지도 연주해 주셨는데, 아무래도 2번 쪽이 더 친근한 곡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플룻 독주곡도 아마 2번에 있는듯?

조성현님의 라이네케 플룻 협주곡은 생소했지만 나름 멋진 선곡. 국내에 소개하고 가장 잘 연주하는 연주가의 음악이라 세심하게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1, 2악장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장중한 흐름이었으나 마지막 악장은 피날레를 향해 달리는 듯한 멋드러진 악장이었네요. 연주를 끝내고 짜잔~ 하는게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인터미션 후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 2번 – 작은 러시아. 실제 작은 러시아라는 명칭은 우크라이나 민요의 선율을 따온걸 보고 붙은 별칭이라고 하기에 지금은 별칭을 우크라이나라고 하는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작곡자의 초기 교향곡 중 대표작이라지만 많이 연주되지 않았기에 약간 심심한 감이 좀 있는듯. 하지만 이것 역시 마지막 악장의 팡파레와 금관 – 호른, 트럼펫, 트럼본의 물결이 피날레를 멋지게 만들어주는 효과는 톡톡히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더불어 작곡자 특유의 러시아 정서도 잠깐잠깐 모습을 보이는 것도 흥미로왔어요.

앞서 말한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2번 중 파랑돌을 앵콜로 연주가 마무리되었네요. 빨간 자켓을 입고 인사를 하며 단원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즐겁게 마무리하던 금난새 지휘자님이 멋졌습니다. 즐거운 연주회였어요!

[프로그램]
– 비제 / 아를의 여인 모음곡 제1번
– 라이네케 / 플루트 협주곡 D장조 Op.283
(intermission)
–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제2번 c단조 Op.17
– 앵콜곡 : 비제 / 아를의 여인 모음곡 제2번 중 IV.파랑돌)

사슴의 왕

[세트] 사슴의 왕 세트 – 전2권8점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사상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추천하는걸 보고 작가가 누구지? 했다가 다름아니라 정령의 수호자 시리즈를 쓰신 우에하시 나호코 여사라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바로 도서관에서 찾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에 정복된 소수 산악민족의 전사로 마지막 전투에서 붙잡혀 소금광산으로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하는 반, 그 광산에 침투해서 모든 노예들을 물어 감염시키고 죽게 만든 검은 개들, 반과 함께 살아남은 어린 여자아이 유나, 그 병균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모으고 약을 제조하고자 하는 옛 왕국의 의료사 홋사이, 의료 일족의 명을 받아 치료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병에서 살아남은 반을 추적하는 사에.

이들을 둘러싸고 제국과 정복당한 민족 사이의 갈등, 원래 살던 곳에서 쫓겨나 어려운 삶을 강요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생존을 모색하던 사람들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두 권으로 나누어진 이야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수호자 시리즈에서 그랬듯 작가님은 전체적인 전장의 흐름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연결되는 인연과 내면의 따뜻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에 사슴의 왕의 모습처럼, 군림하기보다는 약자를 위해 희생하고자 일어서는 반과, 그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찾아나서는 반과 인연이 닿았던 유나, 사에 등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이 원작 바탕으로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있다고 하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움직이는 퓨이카와 순록, 격렬한 전투와 추적, 그리고 원작의 인물들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Guardians of the Galaxy Vol. 3 (2023) - IMDb

3부작의 완결다운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B급의 감성에 눌리지 않고 앞의 두 편에서 만들어진 팀웍까지 굳건하게 다져준 수작이었네요. 마블이 주연들을 교체하면서 삐걱대고 있는 가운데 이쪽 멤버들은 훌륭히 세대교체를 이뤄주어 좀더 기대해봐도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스타로드가 없이 가오갤이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좀 봐야겠지만요. 로켓을 좋아하긴 하지만 로켓만으로 유머가 만들어지지는 않으니 말이죠.

이번 편의 핵심 스토리는 숨겨진 로켓의 과거(!) – 하이 에볼루셔너리와의 악연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주역 멤버들 + 노웨어 멤버들까지 총출동 + 라바저스의 가모라까지 불러와 죽은 멤버 산 멤버 할거없이 참전하는 큰잔치스러운 구도였어요. 우주선만 업그레이드된게 아니라 행성까지 불러오는데다가 적의 행성은 유기체 (우웩), 그 가운데서 사이보그니 뮤턴트니 줄줄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가오갤스러운 유머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근데 어쩐지 맨티스가 엄청 지혜로와졌고 네뷸라는 팀을 배려하게 되었고 드랙스까지 가족애를 보이고 오오 전부다 성장했어! 라는 느낌.

결론적으로 모두다 성장하고서 1기 멤버는 대거 휴식기간을 가지는듯. 2기의 시작도 꽤나 볼만한 멤버여서 후임 감독이 얼마나 즐겁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지 (혹은 못할지) 궁금해집니다. 로켓+그루트, 드랙스와 네뷸라에 신규 멤버인 아담 워록과 파일라, 화살을 쓸 수 있게 된 크래글린과 멍멍 코스모까지 나름 즐거울 수도 있는 멤버라는 생각이네요. 다음 감독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최인아책방 콘서트 – 피아니스트 백혜선

‘나는 좌절의 피아니스트입니다’라는 책을 최근 출간하신 백혜선 님의 콘서트였습니다. 세번째 가보는 최안아책방 콘서트였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에요. 연주가에 따라 관객들의 구성도 반응도 다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이번에 책을 내셨기 때문에 프로그램 구성도 책에 소개된 곡을 따라 진행되는 구성이어 재밌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짜면서도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신 느낌이었어요. 털털한 입담과 강렬한 연주가 연이어 펼쳐지는 가운데 말에서도, 곡에서도 공감할 수 있어 두배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네요. 첫 곡인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 시작해 러시아어 시가 곁들여진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세 곡, 그리고 강렬한 리스트와 여기에 이어진 사랑의 꿈까지. 꿈결같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책도 구입하고 친필 사인도 받으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어 너무 풍성한 성과였다는 생각이었네요. 책도 조만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연주와 이야기 모두모두 감사드려요!

[프로그램]
모차르트 –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차이코프스키 – 사계 중 5월 ‘백야’, 6월 ‘뱃노래’, 10월 ‘가을 노래’
리스트 – 리골레토 연주회용 패러프레이즈
리스트 – 사랑의 꿈, 3개의 녹턴 중 3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