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3-01-02

MMCA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간만에 북촌으로 나갔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중섭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4월까지 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예약 없이 바로 가서 현장예약을 하고 관람을 할 수 있더군요. 가서 바로 다음 차수를 접수하고 테라로사에서 좋은 전망을 보면서 쉬다가 입장, 인원 제한도 되어있어서 쾌적하게 관람을 할 수 있어 더 좋았습니다.

작가의 초기작에서 보이는 인물과 소 같은 동물의 모습들, 주로 캔버스보다는 종이에 물고기, 게,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연필화들, 수많은 은지화, 그리고 헤어져 일본에서 살고 있던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그려진 편지화 등 풍성한 컬렉션이 펼쳐집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는지 물음표가 떠오르는 전시였어요. 게다가 이게 전체 컬렉션이 아니라 일부라는 것이 더 충격. 그리고 당시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집했다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 사이에 그려준 작품들인 편지화였어요. 사랑하는 부인을 보지 못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전한 글과 그림, 직접 옆에서 놀아주지 못해 그림을 그리며 놀아주는 기분으로 보낸 편지와 그림 등이 마음을 찡하게 하더군요.

다음에 북촌에 가면 다른 갤러리도 둘러보며 좋은 전시를 더 찾아보고 싶네요. Todo 리스트에 갤러리들을 담아놓고만 있는데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관람이었습니다.

 

사라장 & 비르투오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사라 장의 바이올린입니다. 거의 한 20여년 전 코엑스에서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전용 홀이 아니었던지라 그리 감명깊은 연주는 아니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냥 잘 하는구나 싶은 생각 정도? 그렇지만 이번 연주회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인데다가 함께 하는 연주자들이 손에 꼽는 분들인만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네요.

  • 프로그램
    – 비탈리 샤콘느 g단조
    – 바흐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BWV1043
    (협연: 1악장 장유진, 2악장 심동영, 3악장 김예원 협연)
    — intermission —
    –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Op8-1, RV269 ‘봄’
    / 바이올린 협주곡 g단조, Op8-2, RV315 ‘여름’
    / 바이올린 협주곡 F장조, Op8-3, RV293 ‘가을’
    / 바이올린 협주곡 f단조, Op8-4, RV297 ‘겨울’
  • 앵콜
    – 바흐 Air
    –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

개인적으로는 샤콘느보다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너무 좋았고, 비발디의 사계는 역시나 명불허전, 깊어진 사라 장의 바이올린 소리와 현악기들+하프시코드의 소리가 너무 좋았습니다. 협연자들 중에서는 악장 장유진 님의 연주가 가장 좋았어요. 혹시 리사이틀 일정이 잡힌다면 꼭 가보고 싶을 정도. 사계는 들으면서 이렇게 첼로를 챌린지하는 곡인줄은 처음 알았네요. 심준호 수석님 사라 장의 눈빛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안정적으로 마지막 악장까지 끌고나가 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앵콜도 너무 좋았어요. 바흐의 Air가 울려퍼지자 콘서트홀의 열기가 살랑살랑 진정되는 느낌, 하지만 관객들의 감동은 너무너무 증폭되는 느낌. 그리고 사계 한 악장으로 깔끔한 마무리. 즐거운 연말 공연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6점
카를로 로벨리 지음, 이중원 옮김/쌤앤파커스

물리학,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공간, 시간, 중력의 해석이 점차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가운데, 우리가 알고 있던 개념은 급격히 변해 왔습니다. 특히 중력에 의해 각자가 경험하는 시간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표현되어 있었고, 물질을 이루는 원자가 실제로 대부분이 빈 공간임에도 원자와 입자 간의 밀어내는 힘에 의해, 그리고 입자의 존재 확률에 의해 물질이 구성되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사실 또한 새롭기도 했지요. 저자는 이에 더해 시간이란 것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음에도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펼쳐냅니다.

책 첫머리에서 지적하는 부분은 전 우주를 보편타당하게 가로지르는 현재, 곧 시간이라는 기준선은 없다는 점이었어요. 시간은 중력과 공간에 의해 변형되는만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시간축은 다른 공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축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었고, 그렇기에 A란 지점에서의 시간과 B란 지점에서의 시간은 서로 다른 변수로 봐야 한다는 것이 물리학에서의 장(field)의 개념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었네요. 여기에 더해지는 이야기는 현대 물리학에서 공간에 대한 방정식에는 시간의 변수 자체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곧 시간은 사물의 변화에 의해 관측되는 현상의 합이라는 이야기였어요.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이런 변화가 가역적이냐 불가역적이냐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나눠진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 또한 엔트로피가 낮은 물질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는 태양이라는 엄청난 엔트로피를 보유한 물체 덕분에 변화와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어요.

물리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지만, 굳이 물리학적인 책이라기보다는 철학 담론같은 느낌도 많이 가지고 있는 그런 책이었네요. 그래도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우주와 시간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좀더 연구가 진행되어 새로운 가능성과 시각을 열어주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