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23-01-25

헤어질 결심

마침내 이 영화를 흠모하겠다는 결심, 《헤어질 결심》 - 시사저널

형사 장해준은 바위산의 남성 추락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사망자의 중국인 부인인 송서래를 알게 됩니다. 용의자로 지목되는 부인을 잠복해서 관찰하면서 점차 호감을 갖게 되는 해준과, 동시에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서래의 만남, 그리고 짧은 연애. 하지만 서래의 노인복지사 일자리와 휴대폰을 이용한 트릭이 드러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네요. 몇 년 후 다시 이포에서 재회한 둘은 또다시 살인사건과 엮이게 되고 이 사건으로 해준은 서래를 다시 의심하며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데..

박찬욱 감독의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입니다만, 원래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지라 평범하게 잘 봤다는 느낌입니다. 영화적으로 실마리와 복선을 잘 깔아놓은 전반부와 이 모두가 하나하나 의미있게 회수되는 후반부가 스토리적으로, 영상적으로, 소품 활용으로 기가 막히게 배치하고 구성했다는 점은 정말 박수를 보냅니다만, 그게 개인적으로는 너무 드러나는 것이 약간 거슬린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잘 만든 영화라는 점에는 백배 동감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빠져들 수 있는가 싶으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저 사람이 범인인데 싶으면서도 감성적으로 아니라서 다행이다는 마음. 반대로 이번에도 저사람이었네 싶다가 어라 이번엔 아닌가 했는데 알고보니 맞고. 그런데 그 모든게 다 나때문이었어 하는 생각의 흐름이 계속 뒤집히는 이 미묘한 표현을 기가 막히게 했다는 것. 정말 장인이에요 감독님.

그리고 소품들. 스마트와치, 번역앱, 전화기, 신발끈, 반지, 옛날 유행가, 안약 등등. 하나하나가 허투루 쓰이지 않고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사용되는게 기가 막히구요, 카메라의 시선 또한 그냥 찍은게 아니고 말이죠. 아 이렇게 영화보면서 생각 많이하게 만드는건 정말 오랜만이었네요.

어쨌든, 여러 박자가 함께 모여 잘 만들어진 수작입니다. 간만에 이 영화 잘만들었네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 작품, 여러 사람이 추천할 만 하네요. 즐겨 보지 않더라도 봐야 할 거 같은 작품이었어요. 잘 봤습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다시 한번 가르는 뜨거운 코트 '더 퍼스트 슬램덩크' [쿡리뷰]

극장판이 나온다는 것도, 애니메이션이란 것도 모르고 있다가 주변에서 한참 떠드는 것을 보고 연휴에 급하게 조조로 예매해서 정말 오랜만에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관람을 했습니다. 워낙 시간이 흐른지라 메가박스 회원도 자동탈회되어서 다음달 말이나 되어야 재가입이 가능하더군요. 덕분에 처음으로 비회원 예매란 것도 해봤네요.

이야기는 송태섭의 시점에서, 북산의 경기 하이라이트인 산왕공고전을 송태섭의 개인사와 교차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오키나와라는 변방에서 어릴적 농구를 잘하던 형을 잃으면서 농구만을 마음의 지주로 삼아온 송태섭이 어떤 마음으로 지내왔는지, 특히 정대만과의 만남과 싸움, 그리고 재회까지가 이어집니다. 반면 채치수와 강백호는 산왕전에서 호흡을 맞추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지죠. 다만 서태웅은 분량이 영.. 이어지질 않네요 ㅎㅎ

만화로 본 주요 분량은 영상의 힘을 받아 매우 역동적으로 펼쳐집니다. 태섭의 넘버원 가드, 개인의 힘이 아닌 북산이 강하단 것을 깨닫는 채치수, 강백호의 왼손은 거들 뿐 + 제 영광의 시대는 지금입니다, 정대만의 이 소리가 나를 몇번이고 되살아나게 한다 등등. 여기에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비트 강한 음악과 순식간에 관객을 빨아들이는 침묵의 연출이 마지막 2분간 북산-산왕간의 경기에 엄청난 몰입감을 더해주네요.

아쉬운건 태섭과 한나 간의 스토리가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것. 둘 간의 개인사가 좀더 있었다면 좀더 스토리가 잘 잡힐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긴 했어요. 그래도 오히려 그쪽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질척질척하지 않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펼쳐낸건지도 모르겠네요.

덕분에 매우 오랜만에 슬램덩크 원작을 소장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새로운 표지 삽화본이 꽤나 멋있게 그려진 것 같아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리스인 이야기 2: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그리스인 이야기 28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경덕 옮김/살림

그리스, 특히 아테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페리클레스 시대, 어떻게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닌 종합방위체제이자 경제공동체로 만들었는지로 시작해 이 체제가 무너지게 된 과정을 황금시대와 우중정치로 이어서 묘사하는 이야기입니다.

1권에서 순수혈통만의 직접지배체제를 구축한 스파르타와 개방된 시민권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는 민주주의체제를 구현한 아테네가 대비되지만, 작가는 단순히 민주주의가 더 우월했다는 결론을 바로 내리지는 않습니다. 페리클레스는 가문과 설득력을 바탕으로 이 민주주의라는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델로스 동맹을 키워냈고, 이집트-시칠리아에 이어 흑해라는 식량공급처를 공고하게 유지하는 체제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데 성공했죠. 반면 우중정치 시대로 이어지는 주요 인사들은 동일한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설득에 실패하거나 과도한 처벌 등으로 인해 구축된 체제를 단시간에 허물어지게 만들고 급기야는 코린토스와 스파르타, 그리고 페르시아의 압력 속에 조그만 도시국가로 쪼그라들고 맙니다.

어느 순간이든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재나 기회는 오기 마련이었지만 아테네는 번번히 이러한 기회를 놓치는 모습이 계속 포착되기도 하죠. 알키비아데스라는 인물과 군사적인 승리도 중간중간 있었음에도 어이없는 선동가와 잘못된 군사 작전으로 인해 아테네는 많은 인물과 군사력을 그대로 잃어버리고 말아버렸네요.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우리 입장에서 아테네는 왜 그랬을까 한심하게 보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합니다.

3권에서는 드디어 그리스의 변방에서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선 마케도니아와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읽고 있지만 가장 기대하는 편이라 금방 읽지 않을까 싶네요. 화끈한 스토리가 나올것인만큼 우리나라의 상황도 그렇게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